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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 순국선 열 , 의 숭고한 삶 193 ▒ 대한민국장 │오동진(吳東振) “나는 세계평화를 완성하기 위하여 조선독립군 사령이 되었다”고 말한 오동진 선생. 일제의 기록에 따르면 오 동진 선생은 연인원 1만여 명이 넘는 부하를 이끌고 일제 관공서를 백여 차례 습격했고 사상자는 900여 명 에 달한다고 적고 있다. 이런 전과로 그는 김좌진, 김동삼과 함께 독립군 3대 맹장으로 불렸다. 3.1 운동 후 만주에서 광제청년단 조직 1889년 평안북도 의주군 광평면 청수동에서 출생했다. 오동진 선생은 어릴 때부터 온후하고 정의 심이 강했다. 강한 자에게는 강하고 약한 자에게는 온순한 사람이었으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그 기 분을 얼굴에 드러나는 일이 드문 소년이었다. 19살에 도산 안창호 선생이 세운 평양 대성학교 사범과를 졸업한 후 고향에 돌아와 일신학교를 설 립하고 지역 청소년의 교육 계몽 운동에 앞장섰다. 일신학교 설립자 중 한 명인 유여대가 3.1운동의 민족대표 33인의 한사람으로 참여하면서 오동진 선생은 의주와 평양의 만세 운동에 동참했다. 의주 와 서울을 중심으로 격렬한 만세운동이 벌어지자, 일제는 만세운동에 참가한 사람들에 대해 체포령 을 내렸는데 오동진 선생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만주로 피신한 후 윤하진, 장덕진, 박태열 등의 사람들과 함께 비밀결사인 광제청년단을 조직했고 대한독립청년단 활도에 적극 참여하였다. 같은 해 5월에는 중국 안동에 있는 이륭양행 2층에 대한민 국 임시정부의 연락 사무소를 설치하고 안동교통사무국을 두어 평안남북도와 황해도를 관할했다. 평생 항일 투쟁으로 일관한 독립군의 3대 맹장 독립 무장 항쟁 단체의 사령장으로 부하를 이끌고 일제에 대한 공격을 감 행 혁혁한 전과를 올려 독립군 3대 맹장으로 불렸다. ● 1889년 평안북도 의주 출생 ● 1920년 광복군총영 총영장(중국 관전현) 대한통의부, 정의부, 고려학명당 군사위원장 ● 1927년 장춘에서 피체(무기징역) ● 1944년 12월 1일 공주교도소에서 옥사, 순국 ●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핵심공적 주요약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