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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 • 민영백 ‘(주)민설계’ 회장(신규식선생기념사업회 이사) 19 려운 중 · 고교 시절을 보내다가 마침 홍익대 건축미 술학과에 들어가게 돼 평생 건축설계 일을 하게 되 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랑하는 이야기는 일체 본지 에 실지 말라고 당부하는 민회장의 부탁이 있었다. 그러나 평생에 중요한 계기가 되는 내용은 게재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집안이 어려워서 일찍 자립해야겠다고 생각했습 니다. 아버님은 무슨 일이나 맡은 일을 열심히 하라 고 말씀하셨죠. 모든 일에 착실하고 정확성을 기해 야 한다고 하셨어요. 특별히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셨어요. 당신 집안이 그래도 손꼽히 는 명문가였는데, 제게 ‘출세’하라고, 특히 당시 사람 들이 동경하던 판사 · 검사나 고위 공무원이 되라고 말씀하신 적도 없어요. 아마도 신규식 외조부님의 ‘실용주의 정신’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실제로 외 조부님은 무장투쟁을 추구하셨지만, 외교적 독립운 동도 중요하다고 보셨죠. 다양한 방법론을 포용하셨 상해 만국공묘 신규식 묘 앞에서의 민필호와 민영수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묘비 왼쪽이 모친 신명호, 오 른쪽은 외할머니(신규식 부인) 조정완 여사와 누나 민 영주. 신규식의 순국 사실을 보도한 『동아일보』 1922년 9월  28일 자 기사(국사편찬위원회 제공) 1932년 항주(杭州) 시절의 모친 신창희(신명호) 여사와 민필호 선 생(『석린 민필호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