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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위원 칼럼 • ‘명예로운 휴전(Honorable Armistice)’과 정전협정 19 의와 거부가 이어졌고 본격 회담이 시작되고 나서 조인이 될 때까지 25개월간 중단과 재개, 교섭이 반복되는 지난한 과정이었다. 26회까 지는 개성에서 그 이후는 판문점에서 열렸으며 159회 본회담, 179회 분과위원회 회담, 188회 참모장교 회담, 238회 연락 장교회담을 거쳐 2 년 17일간 중단과 재개 끝에 정전협정이 체결 되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전쟁을 일으킨 전범에 대해 응징도 하지 않았고, 북진통일 또 한 요원해졌으며 무엇보다도 전쟁의 재발이 도 사리고 있는 상황에서 강대국의 논리로 진행 된 군사정전협정을 찬성할 수 없는 입장이었 다. 교전 당사국이었음에도, 회담이 시작되고 진행되는 동안 한국은 보도를 통해 휴전 소식 을 접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지속되었고, 이 후엔 미 대사관을 통해 관련 정보를 받는 수준 이었다. 회담 개시 후 협정 조인 시까지 한국군 대표는 백선엽 육군 소장을 포함하여 5명이 교 체되었으나, 애초부터 발언권은 주어지지 않 았다. 3년 1개월 동안 전선에서 치열한 혈전을 벌이며 싸웠던 대한민국은 7월 27일 10시 판 문점에서 유엔군과 북한의 수석대표가 조인했 던 현장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당일 13시에는 유엔기지 문산 극장에서 유엔참전국 16개국과 한국 대표 최덕신 준장이 참석한 가운데, 유엔 군 사령관 클라크 대장이 정전협정문서에 서명 했다. 따라서 대한민국으로서는 결코 명예롭다 고 할 수 없는 ‘명예로운 휴전’이었다. 정전협정은 승자도 패자도 없었던 전쟁의 중 단으로써 군사적 측면의 불완전한 협정이었다. 정치적인 합의가 불가능한 부분은 논의되지 않 은 채, 전후 과제로 남겨졌다. 북한의 군사정전 위원회와 중립국 감시위원회의 무력화, 북방한 계선 침범과 서해 해상경계선 설정, 귀환하지 못한 국군포로 및 비무장지대의 중무장화 등 은 정전협정을 위반하는 사례로 이 협정이 불 완전한 체제임을 말해준다. 정치 군사적으로 는 적대와 대결, 경제 사회적으로는 화해와 협 력관계가 공존함으로써 상호 이율배반적이다. 또한, 71년째 지속되고 있는 정전협정은 전쟁 을 중단시키고 억제할 수 있는 긍정적 기능을 하였지만, 한반도의 분단을 고착화하고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을 시도하지 못하게 하였다는 양 면성을 지니고 있다. 평화적 공존을 위해 정전 체제를 전쟁의 종식을 의미하는 평화체제로 전 환하고, 나아가 통일을 이룰 가능성을 다각도 로 모색해 보는 것이 과거 세대에 이루지 못한 현세대의 사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영국 버밍햄대학교 대학원에서 석 사학위를 취득했다. 서강대 · 이화여대 강사, 교육부 국립국제교육원과 전북교육청 행정사무관을 거쳐 현재 전쟁기념관 학예연구사로 활동하 고 있다. 「수주(樹州) 변영로(邊榮魯) 시인이 추구한 유토피아(Utopia) ‘시’와 그의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 ‘술’」, 『전쟁기념관, 그 기억의 장소』 등 다수의 논저가 있다. 필자 윤영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