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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명학교 - 공주3.1운동만세시위 준비지
(기간:1919년 2월~8월)
이화학당에 재학중이던 박루시아는 귀향하여 이활란과 함께 영명여학생들의 독립운동 참여를 고취하였으며 동경 청산학교 재학중이던 오익표, 안성호 등이 귀국하여 영명학교 교사, 동문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확산함. 최초의 시위모임은 현석칠, 김관회, 현언동, 이규상, 김수철등이 참석했음. 김관회는 김수철에게 영명학교 학생들과 함께 독립선언서 1,000매를 인쇄 할것을 부탁하고 김수철은 방학중 집에 가있던 유우석, 노명우, 강윤, 윤봉균, 신성우 등 학생들에게 공주로 올것을 통보하였으며 또한 이규상에게 태극기를 만들어줄 것을 부탁하여 대형 태극기 4개를 제작함.
김수철과 학생들은 영명학교 기숙사에서 독립선언서 1,000매를 인쇄하였고 그 당시 서덕순, 김영배 등이 함께 도와줌.
4월 1일 오후 2시경 공주읍내장터에서 김수철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불렀으며 참석인원은 대략 1,000명 정도 있었는데 만세시위에 앞장섰던 영명학교 교사와 학생들은 일본 순사에 의해 현장에서 체포(당시 충청남도 도청소재였던 공주에는 일본경찰서, 충남경찰부, 일본헌병대 등 주재)되었으나 곧바로 독립만세 시위사건 연루자는 모두 석방 (2년간 집행유예)되었고 사건은 종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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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색인>
박루시아,오익표, 안성호,이규삼,신성우(영명학교졸업생)
이활란(영명여학교 교사)
김관회, 현언동, 이규상, 김수철(영명학교 교사)
현석칠(영명학교 교목)
유우석, 노명우, 강윤, 윤봉균(영명학교 학생)
서덕순, 김영배(공주읍내교회 청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