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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 독립장│이진룡(李鎭龍) 이진룡 선생은 서간도에서 조맹선, 이종협과 더불어 독립부대를 조직하고 수시로 국내로 들어와 일제주재소 를 습격했다. 하루에 백 리를 날듯 신출귀몰하며 민첩하게 공격하고 후퇴해 사람들은 그를 비모퇴(飛毛腿: 날아 다 니듯 빠른 사람)라 불렀다. 지, 덕, 용이 합쳐진 문무를 겸비한 인물 이진룡 선생은 1879년 황해도 평산군에서 독자로 태어 났다. 대대로 명문이던 유림가문 출신인 선생은 주변 사람 들이 평가하기를 천성이 질박하고 정직하며 의를 존중하 고 힘이 남보다 뛰어났다고 한다. 15살에 경서를 통달할 만큼 영특해서 지(智), 덕(德), 용(勇) 이 합쳐진 문무를 겸비한 사람이었다. 의암 유인석의 제자로 위정척사 사상을 바탕으로 한 항일 민족의식을 굳혀 갔다. 선생이 26살이 던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체결 됐다는 소식 이 평산으로 전해졌다. 선생은 그 즉시 사람을 모아서 장인 우병렬 등과 더불어 왜적 때려잡는 것이 나의 직업 신출귀몰한 해서의 명장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에 맞서 수년간 치열 한 유격전을 벌였다. 이후 남만주에서 이주민을 규합하고 군사 훈련을 하 고 군자금을 모았다. ● 1879년 황해도 평산 출생 ● 1907년 황해 평산 의병장으로 항일활동 ● 1911년 중국 관전에서 포수단 조직 ● 1916년 군자금 확보위해 운산광산 송금마차 습격 ● 1918년 5월 1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사형, 순국 ●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 핵심공적 주요약력 이진룡 의병장 어록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