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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궁촌리 마을유래비 백두대간의 중심에서 하늘을 향해 우뚝 선 황학산 넓은 자락이 서편으로 감싸 안은 아늑한 마을 하궁촌(下弓村)은 신라 중엽에는 소라현, 조선시대에는 황간현에 속하였으며, 약산자락에 위치한 마을로 병난 시에는 피난지대로 주요한 은신처가 되어 주었으며, 신라시대에는 심신의 수련을 위하여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화랑들의 도장으로 각광받는 마을이기도 했었다. 천년 묵은 고목 숲에으로 웅창했던 마을 앞 터전은 활 쏘고 무술을 닦던 곳으로 우리 마을을 활골이란 이름으로 오늘까지 전해져 오고 있으며, 말을 사육하는 큰 목장이 있었다는 말매산, 객사로 붐볐던 마을 곳곳의 곡집터, 달 밝은 밤이면 거문고를 뜯으며 풍류를 즐겼다는 월금 등이 있다. 왜구의 노략질이 극심했던 고려말에는 황간현의 관기를 우리마을 하궁촌으로 옮긴 떄도 있었으며, 임진왜란, 6.25동란 시에 피신 온 사람들이 마을이 좋아 정착한 사람들이 많았다. 산자락에 금광이 많이 누런 황금을 쏟아냈다 해서 붙여진 황학산,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에게 도둑맞은 황금의 양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마는 조국 광복 후 한때는 금광이 재개발되어 사십여채의 금방아가 쉴 사이 없이 요란한 소리를 내어 우리 마을이 도시 못지않은 저자거리가 형성되어 경제가 윤택하기도 했던 마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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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개교한 황학초등학교가 우리 마을 하궁촌과 영원히 함께 할것만 같더니 한세기도 못채우고 1998년 폐교되어 배움의 터전을 멀리 할 수밖에 없었으며, 1966년 마을의 전기사업 때 사용자의 부담을 줄이고자 마을과 성쇠를 함께 했던 천여년 괴목들을 벨 수밖에 없었던 한 많은 마을이기도 했다. 깊은 계곡, 아름다운 산천, 금강의 발원지인 궁촌천의 청정수는 용수댐을 막아 상촌면, 매곡면, 황간면, 추풍령면 지역의 주민들에게 생활용수의 혜택을 주고 있으며 나라와 민족과 운명을 같이 하면서 난민들의 고통과 슬픔을 다래주던 유서깊은 마을, 우리 하궁촌의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마을의 전통을 이어가면서 하궁촌에 살고 있는 모든 주민과 우리들과 인연이 있는 모든 사람들의 안녕과 또 우리들의 후손들이 영원히 우리 마을을 가꾸며 지켜 나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이 비를 세운다. 2019년 6월 일 하궁촌 마을주민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