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此는 이웃나라 일본제국주의 도당들이 1895년 4월 2일 청.일전쟁을 유발 승리하게 되면서 8월 20일에는 국모인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을미만행을 자행하고 11월에는 단발령을 내려 국정을 농단하다 1905년 2월 러.일 전쟁에서 또 다시 승기를 잡게 되자 우리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늑약으로 국권찬탈을 노골화 할 때 고종황제로 부터 짐망(朕望)이라는 밀지와 함께 하사금을 받은 정환직 선생이 자제인 정용기와 영천으로 귀향하여 영천, 영일,청송을 중심으로 남으로는 밀양과 울산 북으로는 봉화와 영양에 이르기까지 국권수호를 기치로 거병 창의하였던 산남의진의 산남창의지에 기술된 청송의 동진과 서진의 장령과 2년여에 걸쳐 항전하다 고와실 전투를 마지막으로 장식하였다는 고증된 원문으로 입증되는 바로서 2004년 발행 청송독립운동사의 산남의진과 청송지역란에서 밝혀진 45명의 전사자와 35명의 사상자가 있었다는 통계자료를 간과할 수 없음에 1906년 3월부터 1908년 7월까지 청송의 동.서진에 참여하였던 이름있는 68명중 13명은 서훈이 추서되어 청사에 빛나는 유공자가 되었으나 다 같이 헌신하여 이름이 알려진 나머지 55명의 의병용사 중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후손 불명으로 미서훈되고 있다는 사실은 위 45명의 전사자와 35명의 사상자가 전사자의 일원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는 터이라 만시지탄은 있으나 산남의진 고와실 전투기념비를 청송군민의 성력으로 건립하여 고와실 산하 백석탄을 오가는 길손과 함께 머리숙여 산남의진 의병용사들의 자발헌신 하였던 호국정신인 의병정신을 위무 추모하면서 산남의진의 전투 유적지로서 영원토록 기념하고자 하노라. 2016년 5월 14일 건립 청송군수 의병정신 선양 경북지부 청송지회 지회장 달성 서점 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