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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특별 초대석  만나고 싶었습니다 설훈 국회 국방위원회 의원 18 2023년 3월 설훈 의원의 안타까운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마 음 아픈 것은, 감옥에서 아버님의 부고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민주화가 실현되고 사람이 사랍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보여드리지 못한 것, 그리고 효 도 한번 제대로 해드리지 못한 것이 참으로 안타깝 습니다. 아버님은 일본제국주의와 맞서다 감옥에 갇 혀 모진 고난을 당했지만, 정작 광복을 맞은 대한민 국에서는 독립지사라는 칭호와 예우도 못 받으신 채  눈을 감으셨어요. 1980년 5 · 18 민주화운동의 배후 로 김대중 전 대통령 등 주요 민주인사들이 지목되 었죠. 이 때 제가 연루되어 소위 ‘김대중 내란음모사 건’으로 순천교도소에 있을 때 아버님께서 찾아오 셨어요. 당시 뇌경색 후유증으로 노쇠한 아버지께 서 서울에서 남쪽 끝 순천까지 오신 거죠. 그때 아버 님은 “네 판단이 맞다면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내 활동을 지지해주셨어요.” 참으로 감동적인 일화다. “앞으로도, 아버님이 바 라셨던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계속 노력해나가고, 평 생 가슴에 품으셨던 신념과 의지를 받들어나가겠습 니다.” 역시 독립운동가 후손다운 기개다. 설철수 선 생은 설훈 의원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후인 19 98 년에야 관련 자료가 확인되어 뒤늦게 건국훈장 애 족장을 추서받을 수 있었다. 설의원은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포상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 자료 발굴 과 관련 안내 행정이 아쉽다고 질타했다. 흥사단 아카데미 활동으로 각성, 김대중 전 대통령 과의 인연으로 정치활동 설훈 의원은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와 전두환 정 권의 독재 등에 항거하다가 옥고를 치렀고, ‘5 · 18민 주화운동’에 공헌하기도 했다. 그런데 비교적 젊은  나이에 김대중 총재 비서(1985년), 보좌관(1992년)  등을 역임했고, 1996년 제15대 국회에서 국회의원 에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했다. 영남(창원) 출신으로 서 호남 출신인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계 기가 궁금했다. 그리고 당시 여당이 아닌 야당으로  정치(국회)에 입문한 목적이나 의도가 궁금했다. “제가 사회에 눈뜨게 된 것은 마산고등학교 2학 년 때 가입한 흥사단 아카데미 덕분이었습니다. 도 산 안창호 선생의 정신 계승을 위해 만들어진 흥사 단 아카데미에서 민족혼을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활 동에 참가했고, 나 자신의 미래보다 우리 민족과 국 가의 미래가 중요하다고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고려대 사학과에 들어간 직후인 1974년 4월 ‘긴급조 치 4호’가 공포되어 이에 항의하느라 혼자 삭발을 하 기도 했습니다. 이 해 가을 1학년 동급생들과 함께  유신반대 시위를 했고, 2학년 때부터 고려대에서 유 신반대운동을 주도했지요. 이 과정에서 이른 바 ‘긴 급조치 위반’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 는데, 1979년 박정희 독재 정권이 무너져 가까스로  ➋ ➊  저서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다』  ➋  부마민주항쟁 진상조사 보고서 토론회(2022.10.12) 포스터 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