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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 독립장│이남규(李南珪) “불의로 존재함은 의로움에 망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불의로 사는 것은 의로움에 죽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 하 물며 의(義)가 틀림없이 망했는데도 죽지 않고, 불의(不義)가 틀림없이 존재하는데도 죽지 않겠습니까. 엎드 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매국 무리의 죄를 다스리시고, 원수의 나라(일제)가 맹약을 어긴 죄를 동맹 각국에 포고 하 고, 군신 상하가 일치단결하여 (일제와) 일대 결전을 벌이게 하여 주십시오.” -을사늑약 직후 올린 선생의 「청토적소」 중 고려 시대부터 이름 높은 명문가 출신 이남규 선생은 1855년 11월 3일 서울 미동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 터 동부도사(東部都事)를 역임한 부친 으로부터 한학을 배웠다. 선생의 집안 은 고려 시대부터 이름 높은 유학자와 재상을 배출한 명문가다. 그래서 선생은 후손들에게 문장에 대 한 근원을 다른 곳에서 구할 것 없이 집에서 내려온 글을 연구하라고 할 정도로 대대로 내려온 학문 적 전통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선생은 7살 때부터 당시 기호유림의 대표적 성리학자인 성 선비는 죽일 수 있을지언정 욕보일 수는 없다 일제의 침략을 비판하고 대비하자는 상소를 올려 사람들에게 항일 운동의 상징으로 추앙받았으며 홍주의병을 지원했다. ● 1855년 11월 3일 서울 출생 ● 1893년 일제 침략을 대비하자는 상소를 올림 ● 1905년 일제와 격전을 주장한 상소를 올림 ● 1906년 홍주의병 지원 및 민종식 의병장을 은신시킴 ● 1907년 9월 26일 서울로 압송중 피살, 순국 ●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 핵심공적 주요약력 충남 예산의 이남규 선생 기념관. 옆에 생가가 보존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