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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 순국선 열 , 의 숭고한 삶 175 ▒ 독립장│노응규(盧應奎) “나라에 난신(亂臣) 적자(賊子)가 있으되 임금이 토벌하지 못하고 방백이 토벌하지 못할 경우에는 비록 미천 한 선비라도 토벌에 나서지 못할 이유는 없는 것이니, 대개 적을 토벌하는 대의가 임금의 명령을 받는 것보다 더 급하기 때문입니다.” - 1897년 10월 올린 선생의 지부자현소(持斧自見疏) 중에서 경상남도 안의에서 거의, 진주성 점령 노응규 선생은 1861년 3월 15일 경상 남도 안의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한 학을 익혔고 특히 김해 부사를 역임한 성재 허전의 문하에서 유학을 공부했다. 1876년 개항 이후 일제와 외세가 물밀듯 이 밀려와 내정 간섭과 경제적 침탈하는 것을 보면서 우국충정의 마음을 키웠다. 30세 전후에 위정척사론 거두인 화서 이항로의 제자인 면암 최익현을 찾아 가 르침을 받으며 그의 위정척사 사상과 성 리학적 민족의식을 발전시켜 나갔다. 또 경남에서 올린 의병의 기치 구국의 대의를 역설하다 1896년 경상남도 안의에서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을 점령하고 1906년 충북 황간 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 시설을 파괴하는 등 항일 의병 활동을 전개했다. ● 1861년 3월 15일 경상남도 안의 출생 ● 1896년 경상남도 안의에서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 점령 ● 1906년 충북 황간에서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 척후대 및 일제 시설물 공격 ● 1907년 1월 4일 경성 경무 감옥에서 옥사, 순국 ●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 핵심공적 주요약력 복원된 노응규 의병 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