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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 순국선 열 , 의 숭고한 삶 173 조영기와 안동으로 갔다. 안동의 안동의진과 예안의 선성의진을 둘러본 선생은 며칠 후 있을 대향회에서 의병을 일으키기 로 마음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안동의진이 패했다는 소식에 격분하여 바로 통문을 돌리고 의병을 조직하고자 했으나 주변의 만류로 중지하고 말았다. 그때의 영양 유림은 의병에 적극적이 지 않았다. 의병을 일으킨 후 예안 선성의병에 합류 주변의 만류에 의병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던 김도현 선생은 1896년 2월 13일 안동의진에 필 요한 사람과 물자를 공급하던 류시연으로부터 청량산에서 의병을 일으켜보라는 이야기를 들었 다. 선생이 청량산에 가보니 선성의진이 조직돼 있었 다. 예안에서 수백 명의 사람과 물자를 모은 선생 은 영양으로 돌아와 조승기를 창의장으로 추대해 의병을 일으켰고 선성의진으로부터 중군을 맡아달 라는 부탁을 받아 선성의진에 합류했다. 선성의진은 태봉을 공격할 계획을 짰다. 상주에 있는 태봉은 부산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일본군의 중요 병참선으로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3월 29일 아침, 태봉공격이 펼쳐졌다. 첫 전투였기에 경험이 없고 무기도 열악하며 조직력도 부족했다. 의기만으로는 전투에서 이길 수 없어 후퇴할 수밖 에 없었다. 그 후 내부 갈등으로 선생은 의병장을 그만뒀지만 강릉의진에서 그를 불러 선봉장이 됐다. 강릉의 진은 서울에서 온 관군과 대공산성에서 전투를 펼쳤으나 화력이 우세한 관군의 공격에 의병들은 사 방으로 흩어져 선생은 겨우 10명 남짓한 사람과 함께 영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을사늑약에 항거해 의병 일으키지만 여의치 않아 재기하려 했지만, 주변의 상황이 매우 급하게 돌아갔다. 선생은 인근 지역 의병들이 연이어 패했 다는 소식을 들었다. 안동의진과 김하락의진의 잔여 병력과 힘을 합쳐 영양의 관군을 공격하려 했으 나 의견이 맞지 않았다. 을미년에 일어난 의병은 대부분 해체되고 선생의 의병만 남아, 하는 수 없이 모두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마침내 의병부대를 해산했다. 김도현 의병장의 창의검과 의병부대의 무기고 자물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