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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 독립장│김도현(金道鉉) “집집마다 칼을 갈고 사람마다 원수를 갚기 위해서는 마음을 합하고 힘을 모아 일제히 소리 질러 왜노(倭奴 )들 과 한번 싸워야 할 것이다. (중략) 지난날에 성취하지 못했던 일을 통탄하며 장래 광복할 것을 맹세하나니 금 년 11월 7일 동지(冬至)에는 동해에서 죽어 왜적을 기어코 멸망케 할 것이다.” -김도현 선생이 마지막으로 남긴 ‘동포들에게 드리는 글’ 중 영양에서 의병을 일으키다 김도현 선생은 1852년 경상북도 영양군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의 기록은 불분명하다. 선생이 역사 에 등장한 때는 1896년 1월이다. 1894년 갑오년에 안동에서 처음 의병이 일어났지만 다른 지역은 아 직 조용할 때였다. 하지만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이 내려지자 전국에서 의병을 일으키려는 움직 임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김도연 선생은 사촌 동생 김한현으로부터 영양에서 백성들에게 단발을 강요한다는 일과 안동에서 의병이 일어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부터 의병을 일으킬 준비에 나선 선생은 1월 23일 영양 읍내에서 통문을 돌리고 이튿날 영양지역의 유력한 유생들과 의병에 대한 일을 논의했다. 그 자리에 모인 영양 유림은 안동과 예안의 상황을 살펴본 뒤 의병을 일으키자고 의견을 모아 김도현 선생은 국권 회복의 염원을 동해의 천길 물 속에 던지다 영양에서 의병을 일으켜 활동했으며 영흥학원으로 지역 계몽운동을 펼쳤다. ● 1852년 경상북도 영양 출생 ● 1895년 영양 검산에서 의병을 일으켜 청량산에서 모병 활동 ● 1896년 안동 유시연 의진 등과 합세하여 안동부 공략 ● 1896년 경상북도 지역에서 을미의병 중 최장수 활동 ● 1905년 상소 투쟁 ● 1906년 삼남지역의 의병 활동 촉구 ● 1909년 영흥학교 설립 ● 1914년 12월 22일 동해(영해)바다에 투신, 순국 ●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 핵심공적 주요약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