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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 순국선 열 , 의 숭고한 삶 169 ▒ 독립장│기삼연(奇參衍) 기삼연 선생이 의병을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잠자리에 든 선생은 붉게 타오르는 해를 삼키는 꿈 을 꾸었다. 일어난 선생은 그 꿈이 붉은 해로 상징되는 일제를 소탕하는 꿈임을 확신하고 이를 사람들에게 알렸 다. 성리학에만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분야를 공부한 선비 기삼연 선생은 1851년 1월 18일 전라남도 장성에서 진사 기봉진의 4남으로 태어났다. 선생은 어린 시절 당대의 호남 유림을 대표하던 기정진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다. 기정진은 이항로와 함께 위정척 사 사상을 대표하던 인물이다. 선생은 일반 유생들과는 달리 이론적이고 사변적인 성리학에만 얽매이지 않고 도교, 불교의 경전 과 패관, 야사에 이르기까지 많은 책을 탐독했다. 특히 병서도 연구하는 한편, 실제 여러 가지 병법 을 시험해 보기까지 했다. 훗날 선생이 의병을 일으켜 군사들을 조련할 때, 주위 사람들이 “글이나 읽던 선비가 군사의 일을 언제 익혔을까”하고 궁금해했다고 한다. 젊어서 가족의 권유로 과거에도 응시하였지만, 과거 시험장은 비리와 부정으로 가득해 실패하고 말았다. 다시 집에서 공부하고 있던 중 1985년에 명성황후 살해 사건이 발생하고, 이어 10월에는 단 발령이 시행되자 전국에서 본격적으로 의병 봉기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기우만이 광주향교에서 같이 공부한 동문을 중심으로 의병을 일으키자 선생도 장성에서 300여 명 의 의병을 모집해 광주에 가서 기우만의 의병과 합류한 뒤 스스로 군무를 자원했다. 각 고을에서도 의병 부대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붉은 해 삼킬 수 있다 믿었던 호남창의회맹소 수장 호남지역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면서 항일투쟁을 벌이고 장성, 고창, 영광 등지에서 활약을 했다. ● 1851년 1월 18일 전라남도 장성 출생 ● 1896년 전라남도 장성에서 의병을 일으킴 ● 1907년 호남창의회맹소를 설치, 의병장으로 활동 ● 1908년 2월 3일 광주시 서천교 백사장에서 피살, 순국 ●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 핵심공적 주요약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