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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권회복에 몸바친 고려인의 대부 최재형 최재형(1860-1920)은 고려인사회의 단합, 교육과 계몽, 언론, 독립운동, 의병활동 등 모든 방면에서 고려인사회를 이끈 탁월한 지도자다. 그는 을사늑약(1905년)으로 조국이 위급해지자 평생을 국권회복과 민족을 위해 헌신하였다. 그리하여 민족학교를 세워 동포교육에 힘쓰는 한편 1908년 동의회 총재가 되어 항일 무장투쟁 활동을 이끌었다. 이후 무장투쟁이 어려워지자 1908년 말 『대동공보』 사장으로 국권회복에 노력했으며 1911년에는 권업회 회장으로 고려인의 권익향상과 조국의 독립에 투신하였다. 1918년에는 전로한족중앙총회 명예회장, 1919년 2월 말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임시정부인 대한국민의회 외교부장, 같은 해 4월에는 중국 상해에 결성된 대한미국 임시정부의 초대 재무국장으로 선출되었다. 1920년 4월 4-5일 일본군은 연해주 지역 고려인 항일운동 단체와 개인을 무차별 공격해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는데(4월참변) 그때 최재형은 김이직, 황경섭, 엄주필 등과 함께 체포되어 총살당했다. 그는 체포되기 전날 밤 피하라는 가족들의 간청에 "만일 내가 몸을 숨기면 일본군은 엄마와 너희들에게 잔인한 고문을 가할 것이다. 나는 일본군이 어떻게 아이들을 가혹하게 다루었는지 보았고, 그들의 규율을 알고 있다. 나 자신을 구하기 위해 너희들의 목숨을 내맡길 수는 없다. 나는 오래 살았고, 너희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라고 말하며 죽음을 준비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