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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 순국선 열 , 의 숭고한 삶 163 ▒ 대통령장│정환직(鄭煥直) 몸은 죽으나 마음은 변치 않으리/ 의리가 무거우니 죽음은 오히려 가볍다 뒷일은 누구에게 부탁할꼬 / 말없이 앉아 오경을 넘기노라 - 정환직 선생이 마지막으로 남긴 시- 청일전쟁을 바라보며 싹튼 항일 의지 정환직 선생은 1843년 경상북도 영천군에서 태어났 다. 원래 이름은 치우(致右)였으나 1900년 고종이 이름 과 호를 하사해 이름을 환직(煥直)으로 바꿨다. 고려 중 기부터 중앙 관직에 나간 조상이 많은 이름 있는 가문 출신이다. 어릴 때부터 신동으로 소문이 나 12살 때인 1855년 향 시에서 장원을 차지했다. 그러나 집안 형편이 어려워 의 술을 익혀 각지를 다니던 중, 서울에서 의술로 명성을 얻었다. 44살인 1887년, 같은 집안사람인 형조판서 정 낙용의 추천으로 태의원 전의로 관직을 시작할 수 있었다. 1888년에 충무위사용행의금부도사겸중추원의관으로 벼슬에 올랐고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남 광무황제의 명을 받아 서울진공작전 추진한 의병장 광무황제의 명을 받아 영남지역에서 산남의진을 만들어 의병 활동으로 대 일 투쟁을 전개했다. ● 1843년 경상북도 영천 출생 ● 1888년 의금부 금부도사, 삼남관찰사 ● 1900년 아들 정용기의 산남의진 의병 봉기 ● 1907년 아들의 전사로 산남의진 대장에 오름 ● 1907년 11월 16일 영천 남쪽 교외에서 총살, 순국 ● 1963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핵심공적 주요약력 . 「등루부(登樓賦)」등의 한시를 적어 놓은 정환직 선생 유묵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