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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 10.19 1. 양정리 섬진강변(양재이 깽본) 1948년 10월 19일 여순사건 10.19사건이 발발했고 10월 22일 밤 봉기군들이 백운산과 순천 삽재를 넘어 간전면으로 들어왔다. 그들이 섬진강을 건너 토지면 문수골을 통해 지리산으로 들어가면서 구례지역 여순10.19사건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국군 12연대는 봉기군 토벌을 위해 1948년 10월 말부터 1949년 초까지 구례 중앙초등학교와 구례구역 등지에 주둔하였다. 주둔군은 봉기군에 협조한 혐의가 씌워진 민간인들을 중앙초등학교, 간문초등학교 등으로 연행하여 고문, 취조한 후, 양정지구 섬진강변, 서시천변(서시교 아래) 등지에서 집단 학살하였다. 「구례군 여순10.19사건 조사보고서」(2020년)에 따르면, '양장애 깽본'이라 불리는 영정리 섬진강변 모래밭에 처형대가 설치돼 있었고, 여기에서 3연대, 12연대 군인과 구례경찰 등이 구례 지역에서 다양한 이유로 끌려온 사람들을 학살했다. 당시 3연대 1대대 3중대 소속이었던 군인은 진실.화해위원회 참고인 조사에서 "구금했던 민간인들을 이곳에서 소대별로 돌아가며 한 번에 약 20명에서 30명씩 사살했다"고 진술했다. 2008년 '진화위'에서는 양정리 섬진강변에서 사망한 10명의 신원을 확인했는데, 여기에서 최소 100~120명 정도가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