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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 순국선 열 , 의 숭고한 삶 151 ▒ 대통령장│연기우(延基羽) “우리가 연기우의 말을 듣지 않다가 이렇게 참패하였노라 연기우는 3일 천기를 보는 사람이라 적을 맞아 패 함 이 없고 용병술이 신과 같아서 충국애민하는 지성이 참으로 놀라운데 우리 대한에 연기우 같은 사람 셋만 있 으 면 나라를 찾을 수 있다” - 강기동 의병장의 연기우에 대한 평 강화진위대에서 근무하던 평민 출신 부교 연기우 선생의 성장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진바 없다. 경기도 삭령(지금의 연천)에서 태어나 대 한제국군에서 강화진위대 부교(현 중사)로 근무했다는 사실만 알려져 있다. 이 시기는 외세의 침략 이 강해지고 일제의 식민지화가 진행되던 때였다. 강화도는 서울을 방비하는 최전선으로 배로 서울로 진입하려면 반드시 강화도를 지나게 마련이라 전략상 가장 중요한 곳이다. 실제로 이곳에서는 외세와의 전투가 여러 번 일어나기도 해 이곳에 배 치된 연기우 선생은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일제는 1904년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토록 하더니 1905년에는 을사늑약을 체결케 한다. 광무 황제는 헤이그에 특사를 보내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알리고자 했으나 일제는 헤이그 특사 사건에 대 한 책임을 물어 광무황제를 퇴위시킨다. 지혜와 용기 뛰어난 의병장 서울로 진격하여 일제 몰아내자 대한제국군 강화진위대 부교로 복무하던 중 군대해산에 격분해 의병을 일 으켜 이인영 등과 13도연합의진의 서울진공작전에 참여했고 경기북부 지 방에서 의병으로 활동했다. ● 일자 미상 경기도 연천 출생 ● 일자 미상 강화진위대 부교(현 중사) 근무 ● 1907년 무장 봉기 ● 사망 일자 미상 ●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핵심공적 주요약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