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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위원 칼럼 • ‘명예로운 휴전(Honorable Armistice)’과 정전협정 15 이른 바 ‘명예로운 휴전’이 나온 배경 6 · 25전쟁이 북한의 남침으로 전쟁이 개시된 이후 1년간 유엔군과 공산군은 전선을 남과 북 으로 오르내리며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격전을 벌였고, 쌍방은 다시 38도선 부근에서 상호 대 치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중공군은 춘계공 세에서 10만 이상의 사상자와 심각한 병참 보 급의 난조, 화력의 열세로 회복할 수 없을 만 큼 치명적인 피해를 봄으로써 공격능력을 상실 하였다. 또 북한은 유엔의 제해권과 제공권으 로 전 지역이 초토화됨으로써 체제 붕괴에 대 한 두려움, 승리해도 전후 복구가 어려울 수 있 다는 점과 또 다른 제2의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이에 대해 소련은 전쟁 강행을 주장했으나, 중국의 강력한 권고로 미국과의 확전을 회피하 는 방향으로 의견이 수렴되었다. 미국과 유엔 군은 보다 유리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소련과 의 확전을 피하고, 유엔 참전의 목적이었던 전 쟁 이전 상태의 원상회복이 어느 정도 달성되 었다는 국내·외 정세를 고려하여, 명분에 입각 한 ‘명예로운 휴전’을 모색한다는 정치적 결정 을 내리고, 현재의 교착상태를 ‘명예롭게’ 종식 할 방안을 강구하게 된 것이다. 휴전협상과 군사적 전개 과정 4단계 휴전협상의 전개 과정은 군사적 전개 과정과 긴밀히 연관되어 전개되었기 때문에, 4단계, 즉 개전 초기 단계, 유엔군의 북진 작전단계, 중국군 개입 이후 단계, 휴전협상 단계로 나누 어 살펴볼 수 있다. 1) ● 1단계: 개전 초 북한의 남진(南進)부터 유엔군 참전 시기 개전 초기부터 미국을 비롯한 영국, 인도 등 여러 나라는 6·25전쟁의 확전을 막기 위해 다 양한 외교적 탐색을 벌였다. 개전 초기의 협상 노력은 1950년 6월 29일 모스크바 주재 영국 ‘명예로운 휴전’이라 표기한 다른 문서(출처 :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1951. Volume VII. Korea  and China Part 1) ‘명예로운 휴전’이라 표기한 문서(출처 : The Joint Chiefs of  Staff and National Policy, 1951-1953 The Korean War  Part Two) 1) 시기 구별은 남시욱(『6·25전쟁과 미국』 2015, 서울: 청미디어)의 6·25전쟁의 군사적 전개 과정 4단계를 참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