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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 대통령장│신돌석(申乭石) 1896년 전국에서 일어난 의병전쟁은 처음에는 유림과 양반이 중심이 돼 활동을 펼쳤다. 당시에 활동한 의병 장 중 신돌석 선생은 얼마 없는 평민 출신 의병장으로 신출귀몰한 전략을 펼쳐 명성이 높아 농민들은 그의 명성 을 따라 의병활동에 속속 참여했고 유림 중심의 의병운동을 국민전쟁으로 확대 발전시켜 간 요인이 됐다. 동학농민운동으로 반일 민족의식 확고하게 다지다 신돌석 선생은 1878년 경상북도 영해군 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이필제 난의 중심 지였다. 1870년부터 약 1년 동안 동학교도 와 농민들이 합세해 일으킨 이필제의 난 은 삼남민란 이후 최대의 반봉건 농민운 동이었다. 농민들의 반봉건 의식이 유독 드높은 고장이었기 때문에 선생은 태어나 면서부터 그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선생의 가문은 고려시대에는 개국공신인 신숭겸의 후예였지만, 조선시대에는 중인신분으로 하락 신출귀몰한 전략 펼친 ‘태백산 호랑이’ 평민 의병장 평민의병장으로서, 그 높은 명성과 전과는 일반 농민들의 항일 민족의식과 민중의식을 고양해 평민의병장들을 대거 출현하게 한 기폭제가 됐다. ● 1878년 11월 3일 경상북도 영해 출생 ● 1896년 경상북도 영해의진 중군장으로 활동 ● 1906년 영덕에서 영릉의병장으로 거의 ● 1907년 13도연합의병진의 교남의병 대장 ● 1908년 평해 등지에서 일군 격파 ● 1908년 11월 18일 피살, 순국 ●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핵심공적 주요약력 경상북도 영해군에 위치한 신돌석 장군 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