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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 순국선 열 , 의 숭고한 삶 145 ▒ 대통령장│민긍호(閔肯鎬) “국권을 빼앗기고 국민이 도탄에 빠져있는 때에 내가 일본에 투항하면 일본 치하에서 지위가 높아지고 부귀 가 8역적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나의 뜻은 나라를 찾는 데 있으므로 강한 도 적 왜와 싸워서 설혹 이기지 못하여 흙 속에 묻히지 못하고 영혼이 망망대해를 떠돌게 될지라도 조금도 후회하 지 않는다.” - 강원도 관찰사의 귀순 권유에 대한 선생의 거부 답신 중에서 1897년 입대, 군인의 길을 걷다 민긍호 선생은 명성황후를 배출한 여흥 민씨의 일족으로 186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897년 선생 은 진위대에 입대해 군인의 길에 들어섰으며 이후 강원도 원주 진위대 산하의 고성분견대에 배속됐 다가 춘천분견대로 옮겨 근무했다. 1900년 정교(오늘날 상사)로 진급했고 1901년에는 특무정교(특무상사)로 발탁되어 원주진위대 본 부로 전근했다. 이 시기 일제의 식민지화는 본격화되어 1904년 한일의정서, 1905년에는 을사늑약이 체결되어 대한제국의 외교권과 재정권이 장악되기에 이르렀다. 1907년 대한제국 군대의 강제 해산이 감행되자 서울의 시위대는 일본군과 격렬한 총격전을 벌였 고 그중 상당수 병력이 서울을 빠져나가 의병부대에 합류했다. 서울에서 시작한 군인들의 봉기는 전 국적으로 퍼져나갔고 유림 중심의 의병운동은 이제 해산 군인과 평민들까지 동참한 국민전쟁으로 발전했다. 민긍호 선생도 서울 시위대의 봉기 소식을 듣고 조국과 민족을 위해 무장봉기하기로 결심하고 있 일제의 군대 해산에 맞서 싸운 원주의 대한제국 군인 대한제국군 특무정교로 군대 해산에 불응 원주에서 의병으로 활동해 혁혁 한 전과를 올렸다. ● 1865년 서울 출생 ● 1907년 원주진위대 특무정교로 군대해산에 항거, 의병 활동 개시 ● 1908년 2월 29일 원주 치악산 밑 강림에서 피살, 순국 ●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핵심공적 주요약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