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草堂터 이곳은 조선 李太祖(이태조)임금이 청계산에 피신 은거한 고려말의 僚臣(요신)들을 접견하고자 행차하실때 잠시 쉬시던 초당이 있던 집터로 초당이 사라진 후부터 초당터라 불려온다. 이 비 앞 큰길 서쪽 1400m 지점인 청계동 653번지(노은골 음성박씨 마을입구) 지점을 上直幕(상직막)이라 불러오는데 이곳은 이태조임금행차에 보안을 위해 감시초소가 있었던 장소로 「上」은 임금을 「直」은 잘받든다 「幕」은 초소를 뜻함이다. 고려 태조 왕건이 개국한후 34녀 공양왕을 끝으로 475년만에 고려조가 쇠망하니 고려말의 중신 이성계장군이 이름으로 추대되어 새 왕조의 태조로서 왕위에 올랐다. 이태조가 임금이 되기까지의 역정과 개국후 이곳 청계산에 행차하게된 연유와 고려말 중신들이 청계산에 은거하여 생긴 사적의 유래를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