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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2023년 10월 Column 편집위원 컬럼 작은 소리 큰 울림 당하였다. 이를 방호하려는 궁내부 대신 이경직(李耕 稙)은 양손이 일본 칼로 잘리운 채 총으로 조준 사격 을 당한 뒤 즉사하였다. 훈련대장 홍계훈(洪啓薰)도 일본장교의 칼에 맞아 숨졌다. 왕후를 모시던 궁녀 들은 하나같이 머리채를 끌리운채 “여우가 어디있느 냐”는 신문(訊問)에 대답도 못하고 발길에 채이거나 단칼로 베임을 당하면서 하나 하나 쓰러져 갔다. 무슨 영문인지를 몰라 망건만 쓰고 달려온 세자 이 척(李坧)이 나타나자 괴한들은 망건을 잡아채고 상투 를 붙잡고 흔들면서 왕비 있는 곳을 대라고 다그쳤 다. 대답이 없자 발길로 차면서 앞장을 세워 옥호루 앞마당에 쓰러져 있는 여인이 누구인가를 밝히라고 윽박질렀다. 그 사이 세자빈이 들이 닥쳤으나 칼을 맞고 쓰러졌다. 세자는 울기만 할뿐 말이 없자 일본 무뢰배들은 틀림없는 왕비라 단정하였다. 왕비에게 칼을 휘두른 자는 일본 육군 소위 미야모토 다케타로 (宮本竹太郞)라고 밝혀 졌다. 그리고 현장을 지휘한 자들은 8명의 육군장교였다. 지금까지 낭인의 소행이 라고 알려진 사실들은 모두 거짓이었다는 사실이 밝 혀지고 있다(동아일보 2010년 1월 11일자). 그러나 지금까지 일본군부의 소행임을 자인하는 자체자료는 하나도 없다. 모두가 거짓된 보고자료 뿐이었다. 조선정부의 고문으로 있던 이시즈카 에조(石塚英 藏)라는 사람이 범행자들의 처벌을 가볍게 하기 위해 쓴 보고서라고 하는 것도 보면 기가 막히기가 이를 데 없다. 작가 조흔파는 이렇게 썼다. “왕비를 끌어내 명성황후 표준 영정 참살에 사용된 칼. 칼집에 ‘일순전광 자노호(一瞬電光刺老狐, 순식간에 늙은 여우를 단칼에 찌르다)’는 문구가 쓰여있다(혜문스님 제공) 일본 후쿠오카 쿠시다(櫛田)신사의 겐노스케 궁사가 칼을 뽑아 보여주고 있다(혜문 제공). 아직도 무서운 살기가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