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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운동가 구연영의사 순국기념비 이 곳은 독립유공자 구연영(1864~1907)과 그의 아들인 구정서(1883~1907) 선생이 순국한 곳이다. 구연영 선생은 한 때 정부 관리로 재직하였으나, 일제에 의해 국권이 기울자 관직을 사임하였다. 이후 을미사변, 단발령 등에 격분하여 의병을 조직하였고 1896년 백현과 이현 전투 등에서 일제에 항거하였으며, 남한산성의진을 조직하여 남한산성을 공략하기도 하였다. 의병활동이 위축되자 1897년 기독교에 입문하여 포교활동에 전념하기도 하였다. 1907년 정미의병이 일어나자 구국회를 조직하였으며, 매국단체인 일진회를 성토하는 등 구국계몽운동을 전개했다. 이러한 활동을 하던 중 일본군 수비대에 체포되어 1907년 7월 16일 총살·순국하였다. 구정서 선생은 구연영 선생의 장남으로 구연영 선생이 조직한 구국회에서 활동하다 1907년 7월 16일 구연영 선생과 함께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에 구연영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 1991년 구정서 선생에게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