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page
134page
1919년 3월 28일 포곡면 금어리민 200여명에게 이인봉 홍종욱과 시위 동참하기를 권유 선동, 1919년 3월 28일 모현면 및 삼계리 권종목 등의 만세시위 대열과합세 금어리민 200여명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독립만세를 연창하여 앞장서다. 1919년 3월 28일 포곡면 둔전리를 거처 용인면 김량장으로 향하던 중 용인 헌병분견대의 발포로 사상자를 내고 해산. 1919년 3월 30일 용인 헌병분견대에 체포되어 고문당함. 1919년 4월 경성지방법원에 압송. 1919년 5월 1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0월 언도. 1919년 6월 28일 경성복심법원에 항소하여 기각됨. 1919년 6월 서대문 감옥에 수감되어 복역함. 1920년 6월 형기 만료로 서대문 감옥에서 출옥. 1920년 6월 서대문 감옥에서 고문으로 신병을 얻어 치료. 1985년 6월 26일 용인군 용인읍 고림리 804번지 자택에서 사망. 1990년 8월 15일 독립유공자 건국훈장 애족장을 포상받음. 1990년 10월 28일 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