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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 순국선 열 , 의 숭고한 삶 133 ▒ 대통령장│강기동(姜基東) 의병전쟁이 소멸해 가던 1908년, 일제는 대대적인 의병 탄압을 목적으로 헌병보조원제도를 도입한다. 전통 시 대의 병법에 따라 대부대 중심의 의병연합은 산악을 근거로 한 유격전으로 변했다. 이 시기에 다갈색 양복에 헌 병보조원 모자를 눌러쓴 의병장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강기동 선생이다. 의병을 탄압하던 헌병보조원, 의병이 되다 1884년 3월 5일 서울 명동에서 출생했다. 일제의 기록에 따르면 한동안 서울에서 살다가 형제 간에 불화로 경기도 부평군으로 이사했고 성인이 된 후 기병대에 입대했다고 한다. 일본어가 능 통한 것을 계기로 일제가 1908년 6월에 도입한 헌병보조원으로 양주군 고안헌병분견소에서 근 무하게 됐다. 당시 일제 헌병은 각지에서 일어나던 의병을 진압하는 것이 임무였다. 강기동 선생도 그런 일 제의 헌병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어느 날 길인식 등 2명의 의병이 그가 있던 헌병분견소로 잡혀 오면서 그의 인생이 변하게 된다. 잡혀 온 의병과 대화를 나눈 강기동 선생은 의병의 실상과 조국의 현실에 눈을 떠 의병이 갇힌 감옥문을 열고 총과 탄환을 탈취해 의병장 이은찬이 이끄는 창의원수부에 투신, 의병으로서 대 일항쟁의 대열에 동참했다. 헌병 자리 과감하게 버리고 의병에 투신한 독립투사 고안헌병분견소에 잡혀 온 의병들을 탈출시키고 그 후 의병으로 활동하면 서 포천·양주 등지에서 일본군을 대상으로 유격전을 펼쳤다. ● 1884년 3월 5일 서울 명동 출생 ● 1907년 대한제국군 기병부위 ● 1908년 일본 헌병보조원 ● 1909년 감금된 의병을 탈출시키고 창의원수부 의병가입 ● 1911년 4월 17일 서울 용산 압송 후 총살, 순국 ●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핵심공적 주요약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