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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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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 10.19 봉성산 구례는 '여순10.19사건'의 최장기 피해지역이었다. 김지회, 홍순석 중위 등이 이끌었던 제14연대 봉기군은 1948년 10월 23일 구례(지리산)에 진입했고, 그중 500명의 병력이 3일간 구례읍을 점령하였다가 국군 제3연대와 제12연대가 차례로 구례에 들어와 진압작전을 시작하자 10월 26일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이후 봉기군은 '개전 한달 기념식'을 치르기 위해 1948년 11월 19일 새벽 진압군 본부(중앙초등학교)를 기습하여 교전을 벌였다. 기습을 당한 군경은 19일 아침 반군 협조혐의등으로 구례경찰서에 구금되어 있던 80여명의 민간인을 경찰서 옆 공터, 봉성산 등지에서 사살하였다. 시신은 봉성산 공동묘지에 구덩이를 세곳 파서 집단매장하였다. 출입이 통제되어 사건 몇 달 후에야 유가족들이 수습에 나셨으나 시신들이 서로 뒤엉켜 신원확인이 불가능했다. 사건 당시 시체 처리 작업에 참여했던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매장된 시신은 총 72구였다고 한다.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봉성산 유해발굴 작업을 실시했고, 14개체의 유해와 탄두등 46점의 유품을 발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