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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 국외 독립운동 ● 이종혁 장군. 이종혁은 1892년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석포리 '돌다리' 마을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덕수이다. 그는 일찍이 상경하여 육군유년학교에 입학하였고, 1908년 무관학교에 진학하였다. 그러나 1909년 무관학교가 폐교되면서,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1915년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였다.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일본 육사 출신인 지청천 등과 함께 일본군을 탈출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그후 1923년 길림성 통화현에서 대한통의부에 가입하여 활동하였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육군 주만 참의부에 참여하여 군사위원장으로 활약하였다. 그는 일본군 장교로 출세할 수 있는 길을 버리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험난한 독립군 지휘관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무력의 열세를 벗어날 수 없었고 치열한 항쟁 끝에 1928년 체포되고 말았다. 그후 평양감옥에서 징역 5년을 복역하고 나왔으나 고문으로 인한 병으로 1935년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종혁의 공훈을 기려 198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유해준 장군. 유해준은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대합덕리에서 태어나 합덕공립보통학교(현 합덕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예산농업학교를 수료하였다. 이후 중국 난징으로 망명해 조선혁명당에 가입하여 독립운동가로 활약하였다. 그는 1937년 중국 광저우에 있던 증산대학에 입학하였으나,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한국인 학생 40여명과 함께 항일전쟁에 참여하였다. 그후 난징, 항저우가 일본군에 함락되자, 호북성 장사에 집결하여 김구, 지청천, 조소앙 등의 주축인 한국독립당에 들어갔다. 그리고 장제스가 설립한 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황포군관학교]에서 학업을 마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한국광복군 창설에 이바지하였다. 그는 한국광복군의 최일선에서 대일항쟁을 전개하였고 끝내 읿본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그는 해방을 맞이하자 국군 창설에 참여하였고, 제25사단장, 육군대학총장 등을 역임한후 1967년 육군소장으로 예편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한국광복군에서 활동한 유해준의 공훈을 기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