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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沈熏)[1901 ~ 1936] 심훈은 경성고등보통학교 재학 시 1917년 일본인 수학교사의 민족차별에 항거하여 유급되었으며, 1919년 3.1운동에 참가했다가 3월 5일 투옥되었고, 같은 해 11월 출옥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이회명, 이시영, 이동녕 등과 교류하였다. 1922년 중국 항저우 치장대학 극문학부를 중퇴하였다. 1924년에 귀국한 이후 '극문회'를 조직했다. 1924년 『동아일보』 기자로 입사했다. 1925년 영화 「장한몽」 후반부의 이수일역을 대역하였다. 1926년 한국 최초의 영화소설 『탈춤』을 『동아일보』에 연재하였다. 필명 '훈'을 쓰기 시작하였다. 철필 구락부 사건으로 동아일보사에서 추방되었다. 1927년 일본 유학을 하였다. 일본 영화 「춘희」에 출연하며 한국인 최초로 일본 영화에 출연하였다. 귀국하여 영화 「먼동이 틀때」를 원작, 감독하여 단성사에서 개봉하였다. 1930년 심훈 장편소설 「동방의 애인」.「불시조」를 『조선일보』에 연재하다 검열로 중단하였다. 시 「그날이 오면」,「필경」등 집필하였고, 안정옥과 재혼하였다. 1932년 에는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부모가 있는 충청남도 당진군 송악면 부곡리로 낙향하여 창작 활동에 전념하였다. 1933년 소설 『영원한 미소』 탈고,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였다. 『조선중앙일보』 학예부장을 역임하여 언론인으로서의 삶을 살면서 영화 제작과 소설, 시 창작에 전력을 기울였다. 1934년 장편 『직녀성』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여 그 원고료로 부곡리에 집을 지어 '필경사'라 불렀다. 1936년 「황공의 최후」를 『신동아』에 발표하였다.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한 손기정 선수의 우승에 감격하여 「오오 조선의 남아여!」라는 즉흥시를 남겼다. 대한민국 정부는 심훈의 공훈을 기려 200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또한 충청남도 당진시에서는 1977년부터 매년 9월~10월경 심훈을 추모하고 살록수 정신을 계승하고자 심훈상록문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상록수 소설은 대한민국 광복 이후 기적적인 경제발전과 함께 대한민국의 정신문명을 일으킨 최고의 소설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