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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내장 4.3만세운동에서 순국한 인한수(印漢沫)
인한수(印漢洙)는 1881년 1월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 334번지에서 태어났다. 그는 당시 마을에서 통장을 맡고 있었으며, 1919년 4월 3일 고덕면 한내장(대전, 한천 시장)에서 약 3천여명의 군중과 함께 만세운동을 전개하던 중 순국하였다.
이날 전개된 만세운동은 한내장터에 모여 있던 군중들이 대천교(大川橋) 옆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후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부르면서 태극기를 흔들며 시위하였다.
한내장 만세운동 소식을 들은 대천헌병주재소는 예산 수비대에 지원을 요청하였으며, 현장에서 7명을 체포하여 연행하였다.
이에 격분한 군중들은 헌병주재소로 이동하여 연행자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헌병들은 군중의 해산을 강요하였고, 독립만세를 부르는 군중들을 향해 총을 발포하고 칼을 휘두르며 무력적으로 진압하였다. 그 과정에서 인한수는 해산 명령에 불응하고 대항하다 일본 헌병의 무기(군도로 추정) 사용으로 만세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정부는 그의 공적을 기려 1992년 애국장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