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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칼럼 ➋ • 위기 때마다 이겨내는 힘의 원천 13 사관을 열면서 이승만 대통령은 어느 한 기업인에게 정부에 돈이 없으니 당신 돈으로 공사관을 열고 당 신 돈으로 정부가 파견하는 공사관 직원 월급을 주 도록 부탁하며 공사로 임명했다는 것이다. 믿어지는 가.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 기업인은 나라가 세워진 것만도 고맙다고 생각해 공사 발령을 받고는 런던으로 부임해 자기 돈으로 임대료를 내고 어느 건물 안에 공사관을 열었으며, 정부에서 파견한 외 교관들의 월급도 주었다. 공사관에서 일하는 미화원 등 직원들의 월급도 감당했다. 이렇게 대한민국은 극빈 속에서 첫 발을 내디뎠다. 1950년 6월 25일에 북한의 기습적 전면 남침 으로 시작되어 37개월 동안 계속된 전쟁은 대한민국을 공 산화의 위기에 빠뜨렸다. 다행히 트루먼 미국 대통 령의 용단에 따른 유엔 이름 아래서의 우방 16개국 의 참전, 특히 미국의 참전 그리고 거기에 발맞춘 대 한민국 국군의 항전은 이 나라를 살려냈다. 이 대목 에서 상기하고자 하는 점은 국군 가운데 무수한 장 병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웠다는 사실이다. 자동 차가 다닐 수 없었던 강원도 평강의 어느 험난한 지 역에서는 노무자들이 지게에 45킬로그램 정도의 포 탄 또는 탄약을 실어 꾸준히 날랐다. 내려올 때는 부 상병을 실어날라, 모두 합쳐 하루 평균 16킬로미터 를 걸었다. 밤새도록 나르느라 이동하다 쓰러지기도 했고, 졸다가 절벽으로 떨어져 목숨을 잃기도 했다. 미군은 지게 모양이 알파벳 A자를 닮았다며 그들을 ‘A 프레임 부대’라고 부르기도 했다. 김일성이 무모하게 시도한 공산화는 피했지만 전 쟁으로 나라는 황폐해졌다. 미국의 원조가 나라 재 부산진순절도(국가유산청 제공). 1592년 4월 14일 조선을 침략한 일본군 과 조선 부산진에서의 최초 전투 장면을 영조 36년(1760년) 동래부 화원 변박(卞璞)이 다시 그렸다. 충남 금산의 ‘칠백의총(七百義塚)’과 기념비(불교신문 제공). 칠백의총 은 임진왜란 때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한 조헌 선생과 700명의 의병, 승군 등 을 위한 추모 공간이다. 최근 칠백의총에 300명의 의승(義僧)이 함께 묻혀 있다는 중요한 역사적 기록이 확인돼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