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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사랑방 • 부부의 날 129 니와 아버지가 서로 부를 때에 쓰 는 말인 줄을 안다. 국어사전에 보 면 “아내와 남편 사이에 서로 부르 는 말”이라는 풀이 하면서 “허물 없는 사이의 어른들이 서로를 부 르는 말”이라는 풀이도 덧붙이고 있다. 듣는 사람을 높일 수도 없고 낮출 수도 없는 사이, 높이지도 못 하고 낮추지도 못하는 그런 사이 를 ‘허물없는 사이’라고 한다. 그 리고 허물없는 사이에서 가장 허 물없는 사이, 도무지 높일 수도 없 고 낮출 수도 없이 평등한 사이를 우리 겨레는 아내와 남편 사이라 고 여긴 것이다. 부부가 또 다른 부름말(호칭어) 로 쓰는 것으로는 ‘임자’가 있다. 알다시피 ‘임자’는 본디 ‘물건이나 짐승 따위를 제 것으로 차지하고 있는 사람’을 뜻하는 여느 이름씨 (대명사) 낱말이다. 요즘에는 ‘주 인’이라는 한자말에 밀려서 안방 자리를 빼앗겼지만, 그런 이름씨 낱말을 우리 겨레는 아내와 남편 사이에 부름말로 썼음을 알아야 한다. 아내는 남편을 “임자!” 이렇게 부르고, 남편도 아내를 “임자!” 이 렇게 부르며, 서로가 상대를 자기 의 ‘임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서 로가 상대에게 매인 사람으로 여 기고 상대를 자기의 주인이라고 불렀던 것이며, 아내와 남편 사이 에 조금도 높낮이를 서로 달리하 는 부름말을 쓰지는 않았다. 요즘 더러 아내는 남편에게 높임말을 하고 남편은 아내에게 낮춤말을 하면서 이른바 ‘남존여비’를 드러 내기도 하지만, 김수업 선생은 이 를 지난 세기 일제 침략 기간에 남 긴 일본 사람들 말법의 찌꺼 기라 고 지적한다. 아내와 남편, 평등하며 아예 한 사람 아내와 남편 사이에 높낮이가 없다는 사실은 가리킴말(지칭어) 로도 알 수 있다. 우리 겨레가 아 내와 남편 사이에 쓰는 가리킴말 은 ‘이녁’이었다. 알다시피 ‘녁’은 자리를 뜻하고 ‘쪽’은 방향을 뜻하 지만, 서로 비슷한 뜻으로 쓰인다. 그렇다면 아내와 남편이 상대방 을 가리키려면 마땅히 ‘그녁’, 곧 ‘그쪽’이라 해야 올바를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겨레는 ‘그녁’이라 하지 않고 ‘이녁’이라 했다. 서로가 상대 쪽을 가리키며 자 “여보와 임자”, 부부 사이의 평등을 드러내는  말(그림, 이무성 작가) 평생 우리말 연구에 몸을 바친 김수업 선생의  책 『우리말은 서럽다』표지 「평생도」 가운데 혼인식(국립중앙박물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