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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사랑방 • 추사(秋史) 세한도(歲寒圖) 129 “<세한도> 한 폭을 엎드려 보고 있으니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리는 것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어찌 그다지도 제 분수에 넘치는 칭찬을 하셨으며, 그 감개 또한 그토록 절 실하고 절실하셨습니까? 또 제가 어떤 사람이기에 권세와 이익을 따 르지 않고 도도히 흐르는 세상살이 속에서 초연히 빠져나올 수 있겠습 니까? 다만 모자란 마음에 스스로 하지 않을 수 없었을 따름입니다. 하물며 이러한 그림은, 비유컨대 몸을 깨끗이 지니는 선비와 같습니 다. 결국 어지러운 권세와는 걸맞 지 않은 까닭에 저절로 맑고 시원 한 곳을 찾아 돌아간 것뿐입니다.” ‘세한도’에 취한 청나라 학자와 문인들 앞다투어 감상문 남겨 이상적은 스승의 ‘세한도’를 받 아보고 곧 위와 같은 감격에 겨운 답장을 올렸고 이듬해 10월 동지 사(冬至使) 외교사절의 역관(譯官) 이 되어 연경에 갔다. 그리고 한 자리에서 내로라하는 청나라의 학자와 문인 16명에게 ‘세한도’를 내보였다. 그들은 ‘세한도’의 고고 한 품격에 취하고, 김정희와 이상 적 두 스승과 제자 사이 아름다운 인연에 깊이 감격한 나머지 앞다 투어 감상문을 남겼고, 그 뒤 국내 에서 오세창, 이시영, 정인보 등이 감상문을 붙여 원래 가로 70cm 길 이였던 세한도는 14.7m에 이르는 대작이 되었다. 이상적은 역관을 떠나 중국의 문인ㆍ학자들에게 인정받는 사람 이었기에 겨우 70cm 길이였던 세 한도를 무려 14.7m에 이르는 대 작으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유 배 간 스승을 외면하지 않고 북경 과 제주 사이를 오가며 스승을 받 든 이상적의 아름다운 마음을 우 리는 ‘세한도’에서 본다. 일본에서 끈질긴 노력 끝에 ‘세한도’를 찾아온 손재형 1945년 1월 도쿄(東京)의 한 병 실에 누워있는 후지츠카[藤塚隣, 1879~1948] 씨에게 끈질기게 드 나든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서예 가 손재형 씨다. 후지츠카 씨는 47살 때인 1926년 조선 경성제국 대학 교수로 부임했다. 부임하기 전 북경에 1년 동안 체류했을 때 중국인들이 추사의 학문세계를 높이 사고 있음을 발견하고 추사 라는 인물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후 경성제국대학 교수로 있으 면서 후지츠카 씨는 조선에서 추 사에 대한 많은 자료를 수집하였 고, 이때 ‘세한도’도 그의 손에 들 어가게 되었다. 후지츠카는 조선 에서 일본으로 귀국하면서 조선 의 많은 문화유산을 가지고 갔는 데, ‘세한도’ 등 값나가는 문화유 산을 보관하던 보물창고가 도쿄 대공습으로 거의 불타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 무렵 ‘세한도’의 안위를 걱정 하던 손재형은 병원에 입원 중인 후지츠카 씨를 날마다 찾아가 “세 한도는 조선의 것이다. 그러니 돌 려 달라”라고 끈질기게 설득했다. 이상적이 중국에서 펴낸 《은송당집(恩誦堂 集)》과 이 책에 실린 이상적 초상 과천 추사박물관에 있는 후지츠카 씨의 기 증실(이상 필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