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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합청년회 신합청년회는 1924년 3월에 합덕면에서 결성되었다. 창립 시 회원은 14명이었는데, 1929년에는 33명으로 확대되었다. 창립 시 회장과 회원 명단은 확인되지 않으나, 1929년의 대표자인 상무 위원은 배기영이었다. 신합청년회의 회원은 이 지역의 운동가를 망라하였다. 당시 활동 상활을 고려할 때, 우강면의 운동가는 임종만, 정학원, 성낙훈, 합덕면은 정형택, 조이환, 신평면은 배기영, 심종관 등이 참여하였다. 배기영은 1898년 신평면 한정리에서 태어났다. 선린상업하교 출신으로 1920년 신평면협의원, 1922년 신평공립보통학교[현 신평초등학교] 학무위원, 1923년 신평면협의원에 재선되었다. 배기영은 1924년 당진소작인조합 창립에 앞장섰고 창립 당시 서기가 되었다. 또한 지속적으로 조선노농총동맹과 연대하여 소작운동에 주력하였다. 배기영은 1929년 신간회 당진지회에도 참여하여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해방 직후 당진군 인민위원장을 맡았다가 옥고를 치렀고 한국전쟁 시기에 피살되었다. 또한 임종만과 정학원도 사회주의 운동을 전개하다가 옥고를 처렀고 1933년 출옥하였으나 고문의 여독으로 모두 사망하였다. 신합청년회의 주요 활동으로는 첫째, 우평.강문 평야의 소작농민의 소작쟁의를 지도하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1924년 당진 소작 조합을 합덕에서 창립하여 소작농민을 규합하였고, 재경 지주와 악질 마름의 부당 행위를 조사하였다. 그리고 소작쟁의를 지도하였다. 둘째, 당진이역 청년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하여 충남지방 청년대회를 개최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일제의 간섭으로 무산되자, 이들은 충남지역 사상단체인 '제일선동맹'을 조직하고 사상 강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섯째, 우강과 합덕 지역의 어린이를 교육하고자 야학 운동을 꾸준히 전개하였다. 특히 이들은 농민의 문맹 퇴치뿐만 아니라 봉건의식을 타파하고 새로운 지식과 사상을 보급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우감면의 야학운동은 1929년 범천공립보통학교(현 우강 초등학교)가 설립되는 배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