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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 순국선 열 , 의 숭고한 삶 127 ▒ 대한민국장 │ 최익현(崔益鉉) 신의 나이 75살이오니 죽어도 무엇이 애석하겠습니까. 다만 역적을 토벌하지 못하고 원수를 갚지 못하며, 국 권 을 회복하지 못하고 강토를 다시 찾지 못하여 4천 년 화하정도가 더럽혀져도 부지하지 못하고, 삼천리 강토 선 왕의 적자가 어육이 되어도 구원하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신이 죽더라고 눈을 감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 최익현 유언 중 위정척사(衛正斥邪)의 사상을 자주적인 민족주의 사상으로 최익현 선생은 1834년 1월 14일 경기도 포천군 가범리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집안이 가난하여 4살 때 단양으로 이사했고 그 뒤에도 여러 지방을 전전했다. 14살이 되던 때엔 아버지의 말에 따라서 당시 성리학의 거두인 화서 이항로의 문하생이 됐다. 그 밑에서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사상을 이어받았 으며 나라를 위하는 것이 집을 위하는 것과 같다는 사상과 왕을 숭상하고 오랑캐를 배척하는 대의명분과 결합하며 자주적인 민 족 사상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최익현 선생은 이항로의 제자 중 에서도 수제자로 인정받았다. 23살 때 명경과 갑과에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시작했다. 화서 이항로 계열의 위정척사 사상과 공맹의 왕도정치 구현을 이상으 정도와 강직한 성품으로 구국의 대의 천명하다 끝없는 개혁 의지와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고 의병을 일으켜 일제와 싸우다. ● 1834년 1월 14일 경기도 포천 출생 ● 1905년 을사오적 처단 상소 ● 1906년 호남의병 거의, 일본 대마도 유배 ● 1907년 1월 1일 대마도 유배지에서 자정순국 ●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핵심공적 주요약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