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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완 申貞婉(1916. 4. 8. ~ 2001. 4. 29.) 운동계열: 임시정부 훈격: 건국훈장 애국장(1990년) 신정완(이명 왕링 王玲)선생은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서 1 독립운동가 신익희와 이승희 사이의 딸로 태어났다. 남편 김재호와의 결혼으로 본적은 전라남도 나주군 나주읍 금성동에 두었다. 1919년 아버지 신익희가 중국으로 망명하자, 1922년 가족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가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성장하였다. 1930년대 초 중국에서 중등교육을 마친 후 베이징 즈청대학 (志成大學) 사회학과에 입학했으나, 1937년 중일전쟁 발발로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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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조직 개편(改編) 문제로 갈등이 - 심화되자, 신익희는 임시정부를 떠났다. 정세를 관망하던 신익희는 1935년 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 결성에 합류하여 중앙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선생 역시 아버지를 따라 1937년 같은 당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에 동참하였다. 이 무렵 김재호를 만나 결혼한 선생은 남편과 함께 항일운동의 길로 나섰다. 1940년에는 중국군 제2전구(第2戰區) 엔시산(閻錫山) 부대소속으로 산시성(山西省) 호로촌(胡盧村) 일대에서 대적(對敵) 선무공작과 초모공작에 참여하며 첩보활동을 전개하였다.. 1941년 봄, 부친 신익희와 남편 김재호, 그리고 조선민족해방동맹의 김성숙(金星淑) 등과 함께 충칭(重慶)으로 돌아와 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에 합류하였다. 이후 임시의정원 전라도 구(區) 의원으로 선출되어 독립운동의 정치적 기반을 다지는 데 기여하였다. 광복 후 1946년 4월 귀국한 선생은 독립운동가의 신념을 지키며 조국의 재건과 여성의 사회적 역할 확대에도 힘썼다. 대한민국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