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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역사기행 ➋ • 한국통감과 조선총독의 일본 현장을 가다 ⑤ 127 인 쌍육(雙六)을 왜곡된 식민지 역 사 인식을 심어 널리 민간에 보급 하였다. 쌍육은 2개의 주사위를 굴려 나온 수를 더하여 말을 움직 이며, 자신의 말들이 놀이판에서 먼저 마지막 지점에 도착하면 승 리하는 놀이로 조선인이 즐겨하 는 긴장감과 쾌감을 느끼는 놀이 였다. 그런데 데라우치는 쌍육의 놀 이판에 일제의 한국의 역사를 왜 곡하여 올려 놓았다. 1911년에 만 들어진 놀이판을 보면, 그 중심부 에는 데라우치 자신이 욱일기(旭 日旗)를 배경으로 그려져 있고, 그 아래로 신공황후(神功皇后), 토요 토미 히데요시[關白秀吉, 관백은 히데요시의 직함], 이토오 히로부 미[春畝公, 춘무는 히로부미의 호] 가 차례로 나온다. 그 밖의 인물들 로는 임진왜란의 침략 선봉장 고 니시 유키나카[小西行長], 가토오 기요마사[加籐 淸正] 등이 있다. 중 요한 유적으로는 임진왜란 때의 이총(耳塚)을 그려 두었다. 일본인 자존심 고취와 조선인의 역사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행위였다. 그 밖에 조선통신사(朝鮮通信 使)를 내조(來朝)하는 사신들로 그 렸고, 대마도에서 곡식을 얻어가 기 위하여 보내던 세견선(歲遣船) 을 조선의 공선(貢船)으로 표현하 였다. 역사적 사실을 거꾸로 뒤집 어 우리 민족의 자존감을 상실하 게 쌍육판을 채웠다. 당시에 조선 인들이 이 쌍육판으로 히로부미 나 데라우치에게 존경을 강요당 하며 놀이 하였을 것을 상상해본 다. 데라우치의 세뇌 교육이 얼마 나 졸렬하고 치열했는지를 확인 할 수 있다. 데라우치 가고, 하세가와 오다. 계속되는 무단정치 위의 정책 이외에도 조선교육 령 등 데라우치의 정책은 많으나, 기본은 헌병경찰제을 기초로 한 무단정치였다. 데라우치는 1916 년 10월 총리대신으로 승진하여 총독직을 사임하였다. 그의 후임 으로는 을사늑약의 일등공신이며 당시 한국주차군사령관이었던 하 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가 부임했다. 하세가와는 데라우치 와 같은 조슈번[長州藩, 지금의 야 마구치현] 출신으로 본인은 원하 지 않았으나, 데라우치의 강권에 의해 취임했다고 한다. 그 과정은 어떻든 전임 총독 데라우치의 무 단정치는 그 기조가 하세가와로 이어졌다.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기대학교 사학과 교수 · 부총장,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 문화재위원(사적분과위원장), 국사편찬위원, 러시아 국 립 극동대학교 교환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환교수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후삼국시대 궁예정권 연구』(혜안, 2007), 『성암 손창원』(두이기획, 2023), 『나 의 일본 여행』(두이기획, 2018), 『나의 그리스 여행』(엘피, 2008) 등이 있고, 번역서로 『정한위략(征韓偉略)』(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23) 등과 다수의 논문이 있다 . 필자 이재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