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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역사기행 ➋ • 한국통감과 조선총독의 일본 현장을 가다 ② 127 을 얻지 못하자 이토는 하세가와 와 헌병을 대동하고 개인별로 의 견을 물었다. 참정대신 한규설(韓 圭卨), 탁지부대신 민영기, 법부대 신 이하영이 ‘불가(不可)’라 하였 고, 학부대신 이완용, 군부대신 이 근택,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은 찬성하였다. 이들을 ‘을사오적’이 라 한다. 이렇게 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은 일본에 귀속되었고, 대 한제국은 이른바 일본의 ‘보호국’ 이 되면서 식민지화 되어갔다. 을사늑약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장지연은 ‘시일야방성 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썼고, 윤 치호 등도 무효를 주장하였다. 시 종무관 민영환(1861~1905)이 자 결하였다. 한편에서는 무장 병력 이 봉기하였다(을사의병). 일제는 해외에 있던 대한제국의 공사관 들을 모두 철수시켰다. 유일하게 주러시아공사 이범 진(1852~1911)만 이 오지 않았다. 그 는 이위종(1884~?) 의 아버지로 1907 년 헤이그 특사들을 후원하였고, 1910 년 ‘경술국치’로 자 결하였다. 대한제국에는 한 국통감부가 설치되 었고(1905.11.22), 초대 통감으로 이토 히로부미가 임명되 었다(12.21). 이토 는 한국에 1906년 3월에 부임하였다. 1906년 2월 1일부 터 시작한 업무는 하세가와가 임 시 통감으로 수행하였다. 대한제 국의 국권은 한일신협약, 기유각 서(己酉覺書) 등을 거쳐 1910년의 ‘경술국치’로 소멸되었지만, 을사 늑약으로 말미암아 사실상 국권 이 사라진 것과 다를 바 없다. (계 속)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기대학교 사학과 교수 · 부총장,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 문화재위원(사적분과위원장), 국사편찬위원, 러시아 국 립 극동대학교 교환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환교수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후삼국시대 궁예정권 연구』(혜안, 2007), 『성암 손창원』(두이기획, 2023), 『나 의 일본 여행』(두이기획, 2018), 『나의 그리스 여행』(엘피, 2008) 등이 있고, 번역서로 『정한위략(征韓偉略)』(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23) 등과 다수의 논문이 있다 . 필자 이재범 이토 히로부미가 ‘한국통감’으로 취임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발행한 ‘한국통감부 개청(開廳)’ 기념 엽서   전임 소네 통감과 신임 데라우치 통감 취임 기념으로 발행된 엽 서. 1910년 7월 30일자 소인이 찍혀있다(필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