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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1919년 그날!
온 반도(半島)에 대한독립 만세 함성이 가득할 제 화천은 3월 23, 28일 두 번에 걸쳐 분연히 일어나 태극기 높이 세차게 흔들며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는 동시에 진압하는 일제(日帝)에 맞서 용감하게 피 흘리며 싸웠으니 시위에 나선 군민(郡民)이 3500인이요, 순국(殉國)이 4인, 체포된 수는 175인, 징역형이 22인, 피 튀기는 태형(笞刑)에 처해진 이는 이루 셀 수도 없었다
지금은 기억하는 이 드무나 그 규모는 강원도 내 일등이었고 맨주먹으로 항거한 그 치열함은 실로 반도 내 일등이었다
도성(都城)에서 멀다 하여 사람들은 화천을 변방이라 불렀으나 그날 화천 만세 항쟁이 있던 순간부터 화천은 결코 변방이 아니었다!
1945년 8월 15일
온 민족이 광복의 기쁨속에 태극기 흔들며 내달릴 때도 불행하여라 외세에 의해 38이북은 공산(共産) 치하가 되었으니 화천인은 눈물을 머금고 가슴 속 울분 눌러 감춘 채 태극기 흔들며 자유를 소리 높이 외칠 수복(修復)의 날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도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으로 전쟁이 벌어지고 유엔군의 북진으로 드디어 그 날이 왔으나 원통하게도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공산 치하가 되었다 그러나 마침내 나라의 명운(命運)이 걸린 발전소를 두고 3년의 전쟁 중 가장 격렬한 공방전이 화천에서 벌어졌으니 중공군 이만오천을 수장시킨 파로호 전투로 발전소를 되찾고 이를 뒤집으려 새카맣게 몰려오는 수만(數萬) 중공군의 공세를 643고지 전투에서 백병전(白兵戰)까지 벌이며 혈투 끝에 승리하여 붉은 피로 발전소를 지켜냈다 이에 우리는 이 두 전투를 아울러 화천 대첩이라 부르노니 호국 영웅의 피로써 지켜낸 화천 발전소의 전기(電氣)는 전후(戰後) 산업발전을 일으키는 밑거름이 되었고 궁극에는 오늘날 경제 강국 대한민국을 키워 냈다.
조국 번영의 불씨를 지켜낸 화천 대첩이 없었다면 아! 우리에게 어찌 오늘의 번영이 있었을 소냐? 21세기, 나라는 더 발전하고 화천도 일신(日新)하여 세계 7대 불가사의라는 산천어 축제를 성공시키며 세계만방에 도시의 이름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