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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金在浩(1914.9.28.~ 1976. 7.6.) 운동계열: 임시정부 훈격: 건국훈장 애국장(1990년) 김재호(이명 호건 胡建)선생은 나주 금성동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3대에 걸쳐 독립운동에 헌신한 명문가로, 할아버지 김창균은 1896년 봄 나주 의병의 좌익장으로 활동하다 아들 김석현과 함께 순국하였으며, 아버지 김복현은 1919년 3월 10일 광주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선생의 부인 신정완 여사는 독립운동가 신익희의 딸로, 중국에서 인연을 맺어 함께 독립운동에 참여한 동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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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1933년 2월경 정의은 정의은 등과 함께 난징에 있던 의열단 산하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 입학하여 독립군 간부 양성 교육을 - 받았다. 1934년 4월 졸업 후에는 의열단의 지하공작원으로 활동하며 민족혁명당과 조선민족해방동맹 등에서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중국군 제2전구가 위치한 산시성 일대에서 대적 선무공작과 초모공작을 전개하며 항일전선에서 활약했다. 1941년 5월에는 조선의용대 제1지대 제1전구 사령부에서 활동하였으며, 이후 김구 선생이 충칭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선전부를 조직하자 합류하여 15명의 선전위원 중 한 사람으로 임명되었다. 1942년에는 선전부 선전위원 겸 발행부 주임으로 활동하였고, 임시의정원 '통일의회' 당시에는 조선민족해방동맹 대표로 전라도 출신 의원에 선출되었다. 1943년 4월에는 임시정부 내무부 사회과장, 1944년 5월에는 총무과장을 맡아 임시정부 내의 여러 부문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광복 후 1946년 5월 귀국한 김재호 선생은 해방 정국에서도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노력하였다. 1969년에는 삼선개헌반대 국민투쟁위원회 지도위원으로, 제4공화국 시기에는 유신헌법을 반대하는 '민주회복국민선언'에 독립유공자 대표로 참여하여 국민의 자유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끝까지 헌신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