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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2025년 5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순국 역사기행 ② 교육을 중심으로 한 교육정책이 었다. 교원들은 제복을 입고 칼을 허리에 차고 수업을 하였다. 교육 내용 가운데에는 조선의 역사를 왜곡하고 말살하려는 기도가 숨 어 있었다. 예컨대 일본 신화에 나 오는 스사노오노미코토를 단군의 조상이라고도 하였고, 한반도의 남부를 ‘임나일본부’라고 하여 일 본 고대의 식민지라고 억지 주장 을 하기도 하였다. 데라우치는 우리의 많은 문화 재를 일본으로 가져갔다. 일제강 점기에 약탈된 우리 문화재는 현 재 일본의 오쿠라 컬렉션, 네즈미 술관 등 일본 각지에 퍼져 있는데, 데라우치는 문화재조사를 한 다는 명분으로 많은 문화재를 일본으 로 밀반출하였다. 데라우치도 둘 째라면 서러워 할 문화재 해체 및 약탈범이었다. 경복궁과 같은 조 선의 얼이 담긴 궁궐 등 전통문화 재를 해체하였는데, 불분명하기 는 하지만 일본에서 최근에 환수 된 경복궁 선원전 현판도 데라우 치의 소행이라고 한다. 또한 대한 제국의 자존심인 원구단을 허물 고 조선호텔을 세웠다. 이 호텔은 철도국 직영이었다. 데라우치는 1910년부터 1915 년까지 각계 전문가들을 동원하 여 ‘구관(舊慣)제도의 조사’ ‘고적· 사료 조사’를 실시했다. 그렇게 수 집된 문화재들은 건축물 등을 포 함, 《승정원일기》·《일성록》등 중 요 문헌들이 일본으로 나갔다. 데 라우치가 밀반출한 문화재들은 ‘데라우치 문고’로 야마구치 현립 대학에 보관되어 있으며 그 양이 2만점에 달한다. 약탈의 중심은 데라우치의 사위인 고다마 히데 오(兒玉秀雄) 총독부 관리였다. 한국 전통 놀이를 식민 교육의 도구로 삼다 데라우치는 조선의 고유 놀이 ➏ ➐ ➎ ➎  쌍육판 전체 모습(필자 제공)   ➏  쌍육-공선(貢船). 신라의 공물을 실은 배 80척이 오는 허구의 장면을 그렸다.     ➐  쌍육-이총(耳塚). 임진왜란 때 조선인들의 코를 베어 무덤을 쌓았다는 오사카의 이 총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