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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2024년 8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우리문화 사랑방 토끼, 7~9시를 가리키는 진시(辰 時)는 용, 9~11시를 말하는 사시 (巳時)는 뱀, 11~1시를 뜻하는 오 시(午時)는 말, 낮 1~3시를 가리키 는 미시(未時)는 양, 3~5시를 말하 는 신시(申時)는 원숭이를 새겨 넣 음으로써 누구나 쉽게 시간을 알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세종 때 펴낸 《제가역상집(諸 家曆象集)》(1445)과 정조 때 펴낸 《국조역상고(國朝曆象考》(1789) 에서는 오목해시계의 본보기가 원나라의 천문기구 제작자 곽수 경(郭守敬)이 만든 ‘앙의(仰儀)’라 고 하였다. 그런데 앙의는 해시계 기능 말고도 일식ㆍ월식 관측이 가능한 천문기구였고, 반구의 지 름이 오목해시계의 10배에 가까 울 정도로 컸다고 한다. 앙의가 실제 중국에서 제작되 어 쓰였다는 기록이나 현존하는 유물은 없지만, 만일 그것이 제작 되었다면 궁궐이나 전담 관청에 설치되어 황제의 권위를 높이는 상징물로 쓰였을 가능성이 큰 것 으로 보인다. 천문 관측을 통해 하 늘의 일을 예측하는 것은 하늘로 부터 명을 받은 임금이 주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세종의 오목해시계가 2000년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2011년 한국문화사랑협회를 설립하여 한국문화 를 널리 알리고 있다. 또한. 2015년 한국문화를 특화한 국내 유일의 한국문화 전문 지 인터넷신문 《우리문화신문》을 창간하여 발행인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지은 책 으로는 《맛깔스런 우리문화속풀이 31가지》, 《하루하루가 잔치로세(2011년 문화 관광부 우수도서)》, 《나눔을 실천한 한국의 명문종가》, 《아름다운 우리문화 산책》, 《한국인이 알아야 할 한국문화 이야기》 등이 있다. 필자 김영조 12지신 그림을 새겨넣고 혜정교 등에 설치해 시간을 온 백성에게 나눠주려 했다는 것은 권력을 자 기를 위해 쓰지 않고 온 백성에게 골고루 나눠주려고 한 성군(聖君) 임을 분명히 보여주는 모습이다. 오목해시계의 제작 목적은 당 시 집현전 직제학(直提學)이었던 김돈(金墩, 1385∼1440)이 지은 앙부일구의 명문(銘文)에도 분명 하게 드러난다. “설치해 베푸는 것 가운데 시각 을 알려 주는 것만큼 큰 것이 없습 니다. … 안쪽의 반구면에 도수를  새기니 주천(周天)의 반이요, 12지 신을 그려 넣은 것은 어리석은 백 성을 위한 것입니다. 각(刻)과 분 (分)이 뚜렷한 것은 해에 비쳐 밝 은 것이요, 길옆에 설치한 것은 보 는 사람이 모이기 때문입니다. …”  오목해시계는 대부분 글을 읽 지 못했을 백성들이 시각을 알 수 있도록 12지신 그림을 새겨 넣었 다는 점, 백성들이 많이 다니는 큰 길 가에 설치했다는 점에서 백성 을 위한 공중 시계였음을 알 수 있 다. 이것은 백성을 근본에 두는 민 본정치를 추구하고자 했던 세종 의 뜻이었다. 이 오목해시계가 발전하여 고종 18년(1881) 강윤(姜潤, 1830~1898) 과 동생 강건(姜 湕 , 1843~1909) 형제가 휴대용 오목해시계를 만 들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 한 휴대용 오목해시계(보물)는 동 생인 강건이 만든 것으로, 세로 5.6cm, 가로 3.4cm, 높이 2cm 정도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쓸 수 있을 만한 크기의 아주 작은 해 시계다. 시반면을 오목한 반구형 으로 깎아 내어 선을 긋고 청동으 로 된 시계바늘을 세웠는데, 시반 면보다 약간 더 작은 원통형의 면 을 파서 나침반도 설치했다. 휴대 용 해시계는 방향을 정확히 맞추 어야 제 시각을 알 수 있으므로 나 침반을 함께 넣어 만든, 그야말로 휴대용에 맞는 해시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