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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사랑방 • 마침형 덕담과 또랑광대 125 받으세요”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 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떤 인사를 했을까? 조선시대, 마침형으로 덕담을 했다 “고모님께서 새해는 숙병(宿病) 이 다 쾌차(快差)하셨다 하니 기뻐 하옵나이다.” 이 글은 숙종임금이 고모인 숙희공주에게 보낸 편지 에 들어있는 내용이다. 숙종은 고 모의 오랜 병이 완치되기를 바라 는 마음을 담아서 “숙병이 쾌차했 다 하니 기쁘다”라며 아직 병중이 건만 이미 병이 다 나은 것처럼 표 현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정조 때 사람 한경 (漢經)은 하진백(河鎭伯) 집안사람 들에게 문안 편지를 보냈는데 그 편지에 보면 하진백이 과거 공부 를 더욱 열심히 하고 있다는 소식 을 듣고 가을에 있을 과거에서 급 제했다며 미리 축하의 덕담을 보 낸다. 이밖에 명성왕후(明聖王后, 현 종 왕비)가 셋째 딸인 명안공주(明 安公主)에게 보낸 편지, 인선왕후 (어머니)가 숙휘공주(딸)에게 보낸 편지, 순원왕후가 재종동생인 김 흥근에게 보낸 편지 따위도 모두 이렇게 미리 좋은 일이 있다는 예 견의 덕담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하 면 조선시대 사람들은 “새해 복 많 이 받으세요” 같은 명령투의 말이 아니라, 미래의 기쁜 일이 마치 완 료된 것처럼 "마침형(완료형)"으로 덕담을 했던 것이다. 우리도 올 새 해부터는 선조들처럼 각자의 형 편에 맞게 마침형 덕담을 해보면 어떨까? 마을마다 있었던 또랑광대의 교훈 예전에는 마을마다 또랑광대가 있었다. 이 또랑광대를 국어사전 에서 찾아보면 “판소리를 잘 못하 는 사람”이라고 풀이한다. 그런데, “또랑”이란 집 담벼락 옆을 흘러 가는 작은 실개천을 일컫는 말이 다. 따라서 또랑광대는 또랑에서 나 소리 자랑하는 어쭙잖은 소리 광대라는 뜻으로 마을에서나 소 리 좀 한다고 우쭐거린다며 업신 여겨 일컫던 말이었다. 그렇다면 ‘또랑광대’에는 이런 형편없다는 뜻만 있는 것일까? 실제 예전 또랑광대는 마을의 크고 작은 일 또는 어떤 마당이나 사랑방 같은 삶의 곳곳을 지키며, 판을 살리던 감초 같은 존재였다. 소리꾼은 소리꾼이되 음악성에 파묻히지 않은 채 판이 요구하는 소리를 하던, 아주 중요한 광대였 다. 늘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마 을 사람들과 만드는 판이기에, 판 에 보이는 이웃의 면면과 일상사 를 훤히 꿰뚫고 있을 뿐만 아니라, 편안함과 익숙함에서 오는 즉흥 사설, 판을 자유자재로 놀리는 놀 이성,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덕담이나 재담, 그리고 누구 눈치 도 보지 않고 풍자와 해학을 맘대 로 구사하던 이들이었다. 다시 말하면 이들 또랑광대는 마을에 없어서 안 되는 중요한 존 재였다. 음악성뿐만 아니라 사회 명인 공연에는 수많은 제자나 또랑광대가 함께 할 때 명인은 더욱 빛이 난다. 남사당패의 땅재주 가운데 ‘살판’ 놀음(그 림 이무성 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