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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사랑방 • ‘오목해시계’ 125 대식 시계가 나오기 전까지 다양 한 문명권에서 오랫동안 쓰였다. 전통사회에서 하늘의 움직임을 살펴 역법을 정하고 하늘의 이치 를 따져 농사에 필요한 때를 알려 주는 것은 임금이 해야 할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였으며, 권위를 나 타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세종 때 에는 오목해시계뿐만 아니라 다 양한 해시계, 해와 별로 시간을 알 수 있는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 주는 장치 를 갖춘 물시계인 자격루(自擊漏) 등을 만듦으로써 시간을 권위의 상징물로 여기는 데 그치지 않고 백성에게 시간을 나눠주었다. 세종, 오목해시계를 백성이 많이 다니는 곳에 설치하라 《세종실록》에 따르면, 앙부일구 (仰釜日晷) 곧 오목해시계는 세종 16년(1434) 10월 2일 혜정교(惠 政橋, 지금 교보문고 광화문점과 광화문 사이에 있었던 다리)와 종 묘 앞 두 곳에 처음으로 설치했다. 당시 혜정교와 종묘 남쪽을 지나 서대문과 동대문까지 한양의 동 서를 가로지르는 대로는 백성이 많이 다니던 곳이었는데, 이곳에 오목해시계를 설치해 백성들에게 시간을 돌려준 것이다. 여기서 오목해시계를 한자로 ‘앙부일구(仰釜日晷)’라 하는데 이는 ‘하늘을 떠받드는 가마솥 [仰釜]과 같이 오목한 모양의 해 시계라는 뜻이다. ‘일구’는 ‘해그 림자’라는 뜻으로 해시계를 이르 는 말이다. 보통 해시계는 해그 림자가 표시되는 시반면(時盤面) 이 평면인 경우가 많은데, 오목 해시계는 특이하게도 시반면이 오목한 반구형으로 이루어진 것 이 큰 특징이다. 그러나 세종 때 제작된 다른 과학기구들이 남아 있지 않듯 이, 세종 때의 오목해시계도 현재 남아 있지 않다. 대신 17세기 이 후 19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제작 된 오목해시계들은 많이 남아 있 어서, 오목해시계의 전통이 조선 후기 내내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세종 때에 만들어진 오목해 시계의 중요한 특징인 12지신 그 림이 지금 전해지는 오목해시계 에는 없다. 토끼, 용, 뱀, 말 등을 새겨 넣어 백성들이 쉽게 알도록 하라 《세종실록》 77권, 세종 19년 (1437) 4월 15일 기록에는 “무지 한 남녀들이 시각에 어두우므로 앙부일구 둘을 만들고 안에는 시 신(時神)을 그렸으니, 대저 무지한 자가 이를 보고 시각을 알게 하고 자 함이다”라는 내용이 있다. 한자 로만 표기했을 때 한자를 모르는 백성은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세종임금은 12지신을 새 겨 누구나 쉽게 시간을 알 수 있도 록 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卯時, 辰時, 巳時, 午時, 未時, 申時처럼 한자로만 써 넣으면 한자를 아는 양반들만을 위한 시계일 수밖에 없다. 대신 새 벽 5~7시를 뜻하는 묘시(卯時)는 12지신 그림을 넣은 오목해시계 복원가상 도(김슬옹 교수) 휴대용 오목해시계(조선, 세로 5.6cmㆍ가 로3.4cmㆍ높이2cm, 보물 제852호, 국립 중앙박물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