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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천공립보통하교 3.10학생독립만세운동
면천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은 1919년 3월 10일,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원용은은 형 원용하와 함께 서울에서 전개된 고종의 인산에 참례한 후 귀향하여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원용은은 동급생인 박창신, 이종원과 뜻을 함께한 후, 오후 4시경 전교생 140여 명을 인솔하여 태극기와 '대한독립만세'라는 현수막을 들고 면천의 동문 밖에서 시내를 관통해 공립보통학교까지 시위를 전개하였다. 반장인 이종원은 행렬의 질서를 유지하고 이탈자를 막기 위해 대여의 선두에 섰고, 부반장인 박성은은 대열의 후미에 섰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일본 헌병에게 억압당했고, 공립보통학교 훈도(교사)들에 의해 만류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의 독립을 당당하고 힘차게 외쳤고, 면천공립보통학교 학생의 독립 열기를 드높였다. 만세 운동이 끝난 뒤, 많은 학생들이 일제 경찰에게 취조와 고문을 받았다. 특히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던 원용은과 박창신은 공주형무소에 이감되었다가 4개월 만에 석방되었고 결국 퇴학 처분을 받았다. 면천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만세 운동은 당진 지역에서 최초로 전개된 만세 운동일 뿐만 아니라 충청남도 지역 학생 만세운동 중 처음으로 전개된 것이어서 그 역사적 의미가 크다. 이와 같이 3.10면천공립보통학교 독립만세운동은 순수한 학생들이 주도하여 전개되었고 주변 지역 3.1운동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