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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사랑방 • 24절기, 이 시대에도 필요할까? 125 節)’같은 여러 가지 말들이 《조선 왕조실록》에 자주 나온다. 이처럼 예전에는 봄에서 여름 으로 넘어가는 소만과 망종 무렵 헐벗고 굶주린 백성이 많았다. 보 리는 소화가 잘 안돼 ‘보리방귀’라 는 말까지 생겼지만, 보리방귀를 연신 뀔 정도로 보리를 배불리 먹 어보는 것이 소원이기도 했다. 오 죽하면 ‘방귀 길 나자 보리양식 떨 어진다’라는 속담이 나왔을까. 이 제 우리 겨레도 '보릿고개'란 말을 잊게 되었지만, 살이 쪄서 ‘살 빼 기’가 이야깃거리인 요즘에도 여 전히 굶는 사람이 있다는 기사가 보인다. 주변에 보릿고개로 고통 받은 이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할 때가 소만 무렵이다. 솥이 하마 녹슬었나 보리누름 철은 해도 어이 이리 긴고 감꽃만 줍던 아이가 몰래 솥을 열어보네. 이영도 시인의 <사흘 안 끓여도> 라는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겨울에 들어가는 입동(立冬)에 는 겨울철 먹을 것이 모자랄 까치 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 는 마음을 강조한다. 김남주 시인 은 <옛 마을을 지나며>라는 시에 서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 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 는 조선의 마음이여”라고 노래했 다. 입동 무렵인 음력 10월 10일 에서 30일 사이에는 고사를 지내 는데 그해의 새 곡식으로 시루떡 을 만들어 토광(널빤지를 깔지 않 고 흙바닥을 그대로 둔 광) · 터줏 단지(집터를 지키고 관장하는 터 주신을 담는 그릇) · 씨나락섬(볍씨 를 보관해 둔 가마니)에 가져다 놓 았다가 먹고, 농사에 애쓴 소에게 도 가져다주며, 이웃집과도 나누 어 먹었다. 계절마다 어려운 이웃 · 동물들 배려 또 입동 때는 ‘치계미(雉鷄米)’ 라고 하는 아름다운 풍속도 있는 데, 나이 든 노인들을 모시고 음식 을 준비하여 대접하는 것이다. 이 때는 아무리 살림이 어려운 집이 라도 치계미를 위해 곡식을 내놓 ‘동지’는 이웃과 함께 팥죽 나누고 마음을 여는 날이었다(사진 농촌 진흥청 제공). 추분 때는 고개 숙인 벼이삭을 보며 겸손을 생각하게 한다(그 림 이무성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