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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 대한민국장 │이강년(李康秊) 한평생 이 목숨 아껴본 바 없었거늘 죽음 앞둔 지금에사 삶을 어찌 구하랴만 오랑캐 쳐부술 길 다시 찾기 어 렵 구나 이 몸 비록 간다고 해서 넋마저 사라지랴 - 옥중에서 남긴 시 타오르는 눈빛을 가진 소년, 의병장이 되다 이강년 선생은 철종 9년인 1858년 12월 30일 경상북도 문경군 가은면에서 태어났다. 두 살 때 아 버지를 여의고 큰아버지 이기택의 집에서 자랐다. 커갈수록 다른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키 와 타오르는 눈빛으로 동네 어른들은 장군감이라 불렀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자라서인지 이강년 선생은 23살의 나이에 무과에 급제하여 절충장군 행용양위 부사과로 선전관에 임명되어 벼슬길에 올랐으나 4년 뒤 갑신정변이 일어나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10년간 은거 생활을 하던 중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동학군에 참여했다. 이때 같이 싸웠던 사람 들은 후에 의병활동의 귀중한 동료가 된다. 나라는 바람 앞의 등불이 된 듯 청일 전쟁, 명성황후 살해 등의 사건이 일어났고 결국 단발령을 불씨로 전국에서 일제에 대한 대대적인 의병활동이 시작됐다. 이강년 선생은 제천에서 유인석 선생이 의병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1896년 2월 23일 자신의 재산을 털어 군사를 모집해 고향인 문경에서 의병활동을 시작해 일제의 앞잡이로 활동하며 백성들 의 재산을 빼앗은 안동관찰사 김석중 등 3명을 처형했다. 유림과 농민 모두의 지지 받은 무관 출신 의병장 소백산 지역에서의 의병 활동으로 일본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줬다. ● 1858년 12월 30일 경상북도 문경 출생 ● 1896년 유인석 의진의 유격장으로 활동 ● 1907년 백현전투에서 일본군 수비대 대파 ● 1908년 10월 13일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 순국 ●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핵심공적 주요약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