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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역사기행 ➋ • 한국통감과 조선총독의 일본 현장을 가다 ② 123 천황을 상징적 존재로 두고 도쿠 가와막부[德川幕府]가 권력을 장 악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 힘 이 약해졌다. 특히 미국, 영국, 러 시아 등 외국 함대가 출몰하여 조 정을 위협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1853년에 우라가[浦賀, 神奈川縣] 에 나타난 미국의 제독 페리의 군 함 4척은 흑선(黑線)이라고 하여 일본인에게는 호기심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서양문물에 대한 갈 망이 커졌다. 정한론자 요시다 쇼인의 제자 이토도 그러한 사람들 가운데 1인으로 하기[萩]에 있는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 운영하는 쇼카 손주쿠[松下村塾]에서 수학하였 다. 요시다 쇼인은 정한론(征韓 論) 주장자로서 이미 나오스케[井 伊直弼]에 의한 ‘안정대옥(安政 大獄)’으로 1859년 10월에 사형 에 처해진 존왕양이(尊王攘夷)파 의 인물이었다. 이러한 사상을 이 어받은 이토는 1862년 기도 다카 요시[木戶孝允] 등과 함께 에도(江 戶, 현재 도쿄)로 가서 1863년 1 월에 영국 공사관에 불을 질렀고, 2월에는 막부측 인물 암살에 가 담했다. 그리고 천황 폐위의 전례 에 관련 있는 국학자인 하나와 지 로[塙 次郞, 1807~62] 등을 살해 했다. 존왕양이 활동의 공로를 인 ➊ ➌ ➊  대표적 정한론자 요시다 쇼인(1830~1859)의 초상화(야마구치현 문서관 소장)  ➋  이토 히로부미가 수학한 쇼카손주쿠[松下村塾]  ➌  이토 히로부미가 청년기에 살았던 야마구치현 하기[萩]의 집  ➍  이토 히로부미 집 구내에 세워진 이토 동상 원경(이상 필자 촬영) ➋ 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