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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사랑방 • ‘망종’과 하지 123 했다. 또한, 이날 보리를 밤이슬에 맞혔다가 그다음 날 먹는 곳도 있 다. 이렇게 하면 허리 아픈 데 약 이 되고 그해를 병 없이 지낼 수 있다고 믿었다. 넘기 어려웠던 ‘보릿고개’ 그런데 보리가 익어 베기 전에 식량이 떨어져 굶주리던 시절이 있었고 이를 ‘보릿고개’라고 했다. 일제강점기인 1931년 6월 7일 치 동아일보에는 ”300여 호 화전민 보리고개를 못 넘어 죽을 지경"이 라는 기사가 보인다. 이 보릿고개는 한자로 맥령(麥 嶺), 춘기(春饑), 궁춘(窮春), 춘빈 (春貧), 춘기(春飢), 춘기근(春飢饉), 춘궁(春窮), 궁절(窮節)과 같이 여 러 가지 낱말로 쓰였으며 이러한 말들은 《조선왕조실록》에도 자주 나온다. 이처럼 예전에는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망종까지 헐 벗고 굶주린 백성이 많았다. 먹을 거리가 귀하던 시절, 햇보리를 수 확하면 보리를 맷돌에 갈아 보릿 가루에 간장 · 파 · 참기름 · 물 따위 를 넣고 반죽해 넓적하게 빚어 쪄 먹던 구황음식인 보리개떡도 잊 을 수 없는 음식이다. 특히 이때쯤 에는 보리피리를 만들어 불었던 기억이 새롭다. 망종 때는 ‘망종보기’라는 말이 있는데 망종이 일찍 들고 늦게 들 음에 따라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 쳤다. 음력 4월 안에 망종이 들면 보리농사가 잘되어 빨리 거두어 들일 수 있으나 5월에 망종이 들 면 그해 보리농사가 늦게 되어 망 종 내에도 보리 수확을 할 수 없게 된다고 생각했다. 전라남도와 충 청남도 · 제주도 등에서는 망종 날 하늘에서 천둥이 요란하게 치면 그해 농사가 시원치 않고 불길하 다고 믿었다. 또한 망종 때부터는 본격적인 더위, 곧 양기가 세상을 가득 채워 땀을 흘리는 때이기도 하다. 그러나 땀을 흘리는 것은 가 을에 새로운 기운을 맞이할 수 있 는 몸을 만드는 것이라고 하니 땀 도 기쁘게 흘릴 일이다. 하지 전에 모내기를 끝내야 비가 오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내 6월 21일엔 24절기의 열째 ‘하 지(夏至)’다. 해는 황도상에서 가 장 북쪽인 하지점(夏至點)에 자리 잡게 되는데 북반구에서 밤이 가 장 짧아졌지만, 낮은 14시간 35 분으로 1년 가운데 가장 길다. 정 오의 해 높이도 가장 높고, 해로 부터 가장 많은 열을 받는다. 그 리고 이 열이 쌓여서 하지 이후에 ‘맥령(麥嶺-보릿고개, 붉은 표시)’이 나오는 《정조실록》 5년 11월 29일 기록 원문(왼쪽),  ‘보릿고개(麥嶺期)’란 말이 나오는 1931년 6월 7일 치 《동아일보》 기사(오른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