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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  그는 제3대 한국통감에서 초대 조 선총독이 되었다. 통감과 총독을  역임한 유일한 인물이다. 데라우치 의 조선 통치는 무자비하였다. 그  잔혹성이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 川好道], 미나미 지로[南次郞] 등과  다툴 정도였다. 새삼 여기서 이 이 야기를 하는 것은 일부에서 ‘식민 지 근대화론’의 영향을 받아 일제  때부터 한반도가 크게 발전하였다 는 주장이 있기 때문이다. 일제 강 점기에 물질적 측면에서 풍족해진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본질은  일제가 자신들을 위한 것으로, 식 민지 ‘조선’은 일제의 도구에 불과 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데라 우치의 조선 총독 재임기에 있었던  사실들을 살펴본다. 한국통감과 조선총독의 일본 현장을 가다 ⑤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 [寺內正毅, 1852~1919] 도쿠토미 소호, 아카시 지로와 함께 ‘공포의 3인방’ 이뤄  조선 통치 헌병경찰제 ‘무단정치’로 악명 태형령 · 조선교육령 · 문화재 약탈 등 글  이재범(전 경기대학교 부총장) 데라우치 마사다케의 흉기(凶器), 도쿠토미 소호와 아카시 모토지로 데라우치의 혹독한 통치의 대표 적인 것이 헌병경찰제에 의한 무단 정치이다. 헌병경찰제는 헌병이 일 반인마저 탄압한 제도이다. 그 이 면에는 이를 획책하고 실현한 도쿠 토미 소호[德富蘇峰, 1863~1957] 와 아카시 모토지로[明石元二郞, 1864~1919]가 있었다. 도쿠토미 소호는 구마모토현 출 신의 언론인이다. 그는 조선총독 부 기관지만을 남겨 두고 나머지 언론의 통폐합을 주장한 인물이 다. 일본의 대륙 진출을 획책했던 국권당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으 며, 조선 ‘합병’을 하고 대륙 진출 을 해야 한다는 정한론(征韓論)의 원론적 이론가이자 정치사상가였 다. 지금도 구마모토시에는 도쿠 도미를 기념하는 공원이 있다. 아카시 모토지로는 후쿠오카 출신으로 헌병 장교로 성장한 군 인이다. 그는 내분 공작과 교란 작 전에 탁월한 스파이로 러일전쟁 때는 유럽에 머물면서 레닌을 만 나 러시아의 내분을 조장하여 일 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는데 기여한 최고의 공헌자였다. 1905 년 을사늑약 이후 대한제국에 파 견되어 한국통감부 경무부 경무 총장 겸 한국주차군참모장, 한국 주차헌병대사령관으로 있으면서 의병을 탄압하였다. 1910년 ‘경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순국 역사기행 ② 122 2025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