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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을사년. 120년 전인 1905 년도 을사년이었다. 이 해는 우리  민족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역사 상 최대의 비극적인 해이다. 일제 에 의해 ‘을사늑약(乙巳勒約, 제2 차 한일협약)’이 체결되었다. 일제 는 대한제국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강제로 외교권을 박탈하였다.  대외적으로 대한제국은 식물 국가 가 되었다. 그 장본인이 한국통감 부의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 藤博文, 1841~1909]이다. 한국통감과 조선총독의 일본 현장을 가다 ② 초대 한국통감 이토 히로부미와 그의 흔적들 (1) 대한제국을 박살낸 ‘일본의 영웅’ 정한론자 요시다 쇼인 제자로 한국 침략 앞장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실질적인 배후 을사늑약 주역, 대한제국 ‘보호국화’ 글  이재범(전 경기대학교 부총장) 농민에서 공작(公爵)이 되기까지 이토 히로부미는 우리 민족에 게 역사적으로 증오의 표적 1 · 2위 를 다투는 악인이지만, 일본에서 는 가장 존경받는 위인의 하나로 평가된다. 1,000엔권 지폐에 그 의 초상화가 실렸고, 일본 전국에 많은 기념물과 기념관이 있다. 무 엇보다 ‘대일본제국’ 헌법을 완성 한 인물로 그의 공적은 일본사에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초대 내각총 리대신이면서 전부 4회나 총리를 역임했는데, 최연소(45세) 총리대 신의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그 러나 일본의 영웅이 우리 역사에 서는 잔혹한 침략자로 돌변한다. 그리고 그의 최후는 한국의 독립 운동가 안중근에게 포살 당함으 로써 종지부를 찍는다. 일본에서 이토 히로부미는 ‘개 천에서 난 용’이다. 아명을 슌스 케[俊輔]라고 하는 이토는 1841년 스오[周防, 山口縣]의 농가에서 태 어나 공작의 작위까지 오른다. 이 토는 9살(1849) 때에 그의 아버지 가 하기(萩)의 이토라는 아시가루 [足輕] 집안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바뀌었다. 아시가루는 평상시에 는 농업에 종사하고 전쟁이 나면 군역을 담당하는 하급무사(下級 武士)에 속했다. 이 무렵, 일본은 17세기 초부터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순국 역사기행 ② 122 2025년 2월